유럽의 역사

아프로 전투(서기 1305년):트라키아에서 카탈로니아인과 비잔틴인이 충돌합니다.

아프로 전투(서기 1305년):트라키아에서 카탈로니아인과 비잔틴인이 충돌합니다.

"카탈루냐 중대"는 아라곤 왕과 시칠리아 왕의 전쟁에 참전한 용병 집단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났을 때 이 용병들은 실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긴급하게 군대가 필요한 황제 안드로니쿠스에게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1302년 가을, 1,500명의 기병과 5,000피트의 알모가바르로 구성된 카탈루냐 군대가 로저 드 플로르(Roger de Flor)가 이끄는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안드로니코스는 카탈루냐인들에게 4개월치 임금을 선지급했지만, 이를 소아시아로 즉시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도시에 머물던 카탈로니아인들은 역시 그곳에 머물고 있던 제노바인들과 재빨리 충돌하게 되었고 곧 정기적인 공격을 가해 약 3,000명을 학살했습니다. Andronicus는 de Flore를 대공으로 만들고 그의 조카 마리아를 아내로주었습니다. 1303년 겨울 초에 카탈루냐인들은 아시아로 건너가 키지쿠스(Cyzicus)에 진을 쳤다. 그곳에서 그들은 다시 공동 왕 마이클의 앨런 용병들과 충돌하여 그들의 지도자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동시에 터키인들은 방해받지 않고 전진했습니다. 1303년 5월이 되어서야 카탈루냐인들은 이주를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 가치를 보여주었습니다. Germas 지역에서 그들은 터키 시체를 파괴했고 Avlaki에서는 필라델피아를 포위하고 있던 Emir Sir Ali의 군대를 파괴했습니다. De Flore는 마이안더(Maiander)까지 진격을 계속하지 않았지만 리키아(Lycia)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터키 에미르인 사루한(Saruhan)과 아이디니우스(Aydinius)의 군대를 분산시켰습니다.

그러나 카탈로니아인들은 투르크족에 대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주저하지 않고 비잔틴인들을 약탈하여 재산을 빼앗고 공동 왕 미카엘의 불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또한 쉽게 약탈할 수 있다는 전망으로 인해 Rocaforte와 d'Entenza 휘하의 다른 카탈로니아인(500명의 기병과 2,000명의 보병)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 후 안드로니쿠스는 d Endenza에게 특권을 부여하면서 카탈로니아인들을 분열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나누지 못했습니다. 대신, 카탈로니아인들은 단결하여 싸우기를 거부했습니다.
1304년 ​​내내 그들은 투르크족에 맞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1305년 초 안드로니코스는 카탈루냐인들에게 금화 30,000개를 추가로 주면서 투르크족에게 포위된 필라델피아를 구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드 플로레는 원정을 떠나기 전인 1305년 4월 300명의 기병과 함께 미카엘을 만나기 위해 안드리아누폴리스로 갔다. 그가 소환됐는지, 아니면 스스로 행동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알란 용병들의 지도자인 조지에 의해 살해당했고, 그의 아들은 그가 키지쿠스에서 학살했습니다.

카탈로니아인들은 즉시 de Endenza를 그들의 지도자로 지명하고 제국에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터키 용병을 고용하고 트라키아로 건너가 모든 것을 약탈했습니다. 이질적인 군대의 수장인 미카엘은 1305년 7월 트라키아의 아프로에서 그들을 요격하려 했습니다.

당시 카탈루냐인은 3,000명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는 주변 지역을 약탈했습니다. Michael은 약 6,000명의 군인과 함께 돌진했는데 그 중 비잔틴 군인은 거의 없었습니다. 다른 소식통에 따르면 미카엘의 군대는 14,000명에 달했는데, 이는 당시 제국의 기준으로 볼 때 상당히 과도한 수치였습니다.

미카엘은 오른쪽의 원주민 기병대, 왼쪽의 터키 및 알란 용병, 중앙의 훈련받지 않은 보병을 지휘했습니다. 군대가 줄을 서자 미카엘은 알란족과 투르크족에게 공격을 명령했습니다. 그들은 공격했지만 카탈로니아인들은 저항하고 등을 돌리고 떠났고, 다른 사람들은 카탈로니아인에 합류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비잔틴 군대의 좌익은 드러나지 않았으며 카탈로니아인들은 이를 이용하여 매우 대담하게 움직였습니다. 점차적으로 미카엘과 100명의 정예 기병을 제외한 전체 비잔틴 군대가 달아났습니다. 그들은 필사적인 공격을 가했으나 치명적인 격퇴를 당했고 마이클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승리 후에도 카탈로니아인들은 파괴적인 작업을 계속하여,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학살하고 불태우고 불명예스럽게 하고 약탈했습니다. Chandrinos 장군이 비잔틴의 지휘권을 인수하자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그는 카탈루냐인들에게 압력을 가하여 그리스 남부로 이동하도록 강요했습니다. 마침내 카탈로니아인들은 아테네 공국의 라틴인들을 물리치고 보이오티아에 자신들의 국가를 세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