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탈루냐 대중대의 등장
'카탈루냐 대중대'는 아라곤 왕과 시칠리아 왕 사이의 전쟁에서 싸운 용병 집단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이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병력이 절실하던 황제 안드로니코스 2세에게 용병 서비스를 제공했다.
1302년 가을, 로저 드 플로르(Roger de Flor)가 이끄는 기병 1,500명과 알모가바르(Almogávar) 보병 5,000명으로 구성된 카탈루냐군이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했다. 안드로니코스 황제는 그들에게 4개월치 급여를 미리 지급했지만, 곧바로 소아시아로 파견하지는 않았다.
도시에 머무는 동안 카탈루냐인들은 그곳에 있던 제노바 상인들과 빠르게 충돌했고, 이윽고 그들에게 정기적으로 공격을 감행해 약 3,000명을 학살했다. 안드로니코스는 드 플로르를 메가스 두스(대공작)로 임명하고 조카딸 마리아를 그의 아내로 주었다. 1303년 겨울 초, 카탈루냐인들은 소아시아로 건너가 퀴지코스에 진영을 세웠다. 그곳에서 그들은 공동황제 미카엘 9세 휘하의 알란 용병들과 다시 충돌하여, 그들의 지도자의 아들을 살해하기까지 했다.
소아시아에서의 성공과 약탈
같은 시기 튀르크는 아무런 저항 없이 전진하고 있었다. 카탈루냐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1303년 5월에 이르러서였다. 하지만 그들은 곧 실력을 입증했다. 게르마스 지역에서 튀르크 부대를 섬멸했고, 아블라키에서는 필라델피아를 포위 중이던 에미르 시르 알리의 군대를 궤멸시켰다. 드 플로르는 마이안드로스 강까지 더 진격하지 않고 리키아 방면으로 방향을 돌려, 사루한과 아이디니우스(아이딘)의 튀르크 에미르들이 이끄는 군대를 흩어버렸다.
그러나 튀르크에 대한 승리에도 불구하고, 카탈루냐인들은 비잔틴인들을 약탈하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의 재산을 빼앗는 행위는 공동황제 미카엘의 큰 불만을 샀다. 한편 쉬운 약탈이라는 전망은 로카포르트와 데텐차가 이끄는 기병 500명과 보병 2,000명의 카탈루냐인들까지 더 끌어들였다. 안드로니코스는 데텐차에게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 카탈루냐인들을 분열시키려 시도했다.
결렬과 드 플로르의 암살
그러나 분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카탈루냐인들은 결속을 유지한 채 전투 참여를 거부했다. 1304년 내내 그들은 튀르크에 대한 어떠한 작전도 수행하지 않았다. 1305년 초, 안드로니코스는 튀르크에게 포위된 필라델피아의 구원을 간청하며 카탈루냐인들에게 금화 3만 니케포리온을 추가로 지급했다.
그럼에도 드 플로르는 출정에 앞서 1305년 4월, 기병 300명을 이끌고 아드리아노플로 가서 미카엘을 만났다. 이것이 소환에 의한 것이었는지 자신의 자발적 판단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곳에서 그는, 퀴지코스에서 자신의 아들을 살해당했던 알란 용병 지도자 게오르기오스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아프로 전투
카탈루냐인들은 즉시 데텐차를 새 지도자로 추대하고 제국에 선전포고했다. 그들은 튀르크 용병까지 고용해 트라키아로 건너가 만나는 대로 모든 것을 약탈했다. 미카엘은 이질적인 부대들로 구성된 군대를 이끌고, 1305년 7월 트라키아의 아프로에서 그들을 요격하려 했다.
당시 카탈루냐 진영에는 단 3,000명만 남아 있었다. 나머지는 주변 지역을 약탈하고 있었다. 미카엘은 약 6,000명의 병사로 신속히 진격했으나, 그중 순수 비잔틴인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다른 사료들은 미카엘의 군대가 14,000명에 달했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제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과장된 수치로 여겨진다.
미카엘은 우익에 토착 기병을, 좌익에 튀르크 및 알란 용병을, 중앙에는 훈련되지 않은 보병을 배치했다. 진형이 갖춰지자 미카엘은 알란족과 튀르크에게 공격을 명령했다. 그들이 공격에 나섰지만 카탈루냐인들은 이를 버텨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용병들은 등을 돌려 물러났으며, 일부는 오히려 카탈루냐 쪽에 합류해 버렸다!
이렇게 되자 비잔틴 군의 좌익은 무방비하게 노출되었고, 카탈루냐인들은 이를 대담하게 활용했다. 점차 비잔틴 군 전체가 도주하기 시작했고, 전장에는 미카엘과 정예 기병 100명만 남았다. 그들은 필사적인 공격을 감행했지만 치명적으로 격퇴되었고, 미카엘은 부상을 입었다.
전투 이후
승리 이후 카탈루냐인들은 파괴 행위를 계속 이어갔다. 그들이 지나가는 길마다 학살과 방화, 유린과 약탈이 자행되었다. 상황이 변한 것은 장군 찬드레노스가 비잔틴군의 지휘를 맡으면서부터였다. 그는 카탈루냐인들을 압박해 남부 그리스 방면으로 이동시켰다. 마침내 카탈루냐인들은 아테네 공국의 라틴인들마저 격파하고, 보이오티아에 자신들의 국가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