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장 참혹했던 승전
시칠리아 칼타부투로(Caltavuturo) 전투는 비잔티움 제국의 전투 중 가장 덜 알려진 전투이자, 동시에 아랍 세력에게 가장 참담한 결과를 안겨준 전투 중 하나다.
아글라브 왕조가 통치하던 아랍 토후국은 오늘날 리비아와 알제리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영토를 넓혔고, 시칠리아까지 세력을 뻗치고 있었다. 서기 880년, 비잔티움 해군은 아랍 함대를 상대로 해상 대승을 거두었고, 이 성과에 힘입어 황제 바실리우스 1세(마케도니아 왕조)는 시칠리아에서의 대대적인 반격을 결심하게 된다.
타오르미나의 패배, 그리고 무셀리키오스의 파병
881년, 하산 이븐 알압바스가 이끄는 아랍군은 타오르미나(타우로메니온) 인근에서 시칠리아 주둔 비잔티움 사령관 바르사키오스를 격파했다. 그러나 황제는 좌절하지 않고 무셀리키오스(모실리키오스라고도 불림) 장군에게 증원군을 맡겨 파병했다. 그는 880년부터 이미 해당 지역에 머물며 지형과 적을 깊이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무셀리키오스는 아마도 아르메니아계 출신으로, '스파타로칸디다토스(spatharokandidatos)' 칭호와 메소포타미아 투르마르크(tourmarches) 직위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케팔로니아에서도 장군으로 복무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해지는 인장에는 "주여, 주의 종 무셀리키오스, 황실의 스파타로칸디다토스이자 메소포타미아 투르마르크를 도우소서"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또한 그는 아테네 출신 여황제 이레네의 폐위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성인의 환시와 전투의 전개
이 전투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많지 않으며, 콘스탄티노플의 성 이그나티우스 행전과 아랍 역사가 이븐 알아시르의 기록 두 곳에서만 찾을 수 있다. 첫 번째 사료에 따르면, 무셀리키오스 장군은 전투를 앞두고 성인에게 기도했고, 환시 속에 나타난 성인은 아랍군을 향해 우익(右翼)으로 공격을 개시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해진다.
장군은 지시를 그대로 따랐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전투의 구체적인 진행 과정, 양측의 병력 규모와 같은 세부 사항은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비잔티움군이 아랍군의 좌익을 돌파한 뒤 측면을 공격해 적군을 궤멸시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 일곱 명만 살아남았다"
아랍 역사가의 기록에 따르면, 비잔티움은 압도적인 대승을 거두었고 아랍군에서 살아남은 자는 불과 일곱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 전투에 관해 더 알려진 것은 없지만, 어쨌든 이 승리는 시칠리아 내 비잔티움 세력의 존속에 소중한 시간을 벌어주었고, 그들은 그 후로도 수십 년간 시칠리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전장의 이름은 인근에 세워진 아랍 요새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