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반세기가 넘는 터키와 에게해 사이의 심리전... 1967년 11월의 위기

반세기가 넘는 터키와 에게해 사이의 심리전... 1967년 11월의 위기

1967년, 그리스에게는 정말 험난한 해였다. 4월 21일 군사 쿠데타에 더해, 터키와의 전쟁 가능성마저 현실로 다가온 해였다. 터키계 키프로스인들은 여전히 자치를 추구하고 있었고, 터키는 그들의 봉기를 부추기며 그리스-터키 관계의 긴장을 한층 고조시켰다. 터키의 쉴레이만 데미렐 총리는 1967년 9월 9일 "키프로스에서 우리 공동체의 평화와 안전을 침해하려는 모든 행위에 대해 터키는 직접 맞서 대처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스테르기오스 테오파니디스 기고

결실 없는 에브로스 회담

에브로스에서 열린 그리스-터키 정상회담 첫날, 당시 그리스 총리 K. 콜리아스와 쉴레이만 데미렐이 마주 앉았다. 군사정권은 인상적인 외교적 성과를 내려 했지만, 결과는 키프로스 문제에서의 결정적인 참패였다.

아테네가 추진한 9월 9일과 10일의 에브로스 회담(첫째 날은 터키 영토인 케산에서, 둘째 날은 그리스 영토인 알렉산드루폴리스에서 진행)은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 사단의 키프로스 철수로 이어지고 말았다.

1967년 9월 알렉산드루폴리스에서 군사정권 초대 총리 K. 콜리아스와 S. 데미렐이 회담하는 모습. 약 두 달 뒤인 1967년 10월 31일, 섬을 떠나 있던 터키계 키프로스인 지도자 라우프 덴크타슈가 1964년 8월의 전투 이후 카르파시아에서 키프로스 당국에 체포된다. 날이 갈수록 상황은 악화됐고, 정세는 급격히 흘러갔다.

터키가 부추긴 이 키프로스 위기는 1967년 12월 그리스 사단의 섬 철수로 귀결됐고, 결국 7년 뒤 악명 높은 참사의 씨앗이 되고 만다. 바로 이 시기, 그리스 공군은 에게해 상공에서 터키의 대규모 도발을 역사상 처음으로 직면하게 된다.

1967년 11월 8일, 에게해 상공의 대규모 침공

그날은 1967년 11월 8일, 공군의 날 행사가 시작되어 모든 부대가 일반에 공개되던 날이었다. 오전 10시 30분경, 아무런 사전 경고와 도발 명분 없이, 1923년 로잔 조약 체결 이후 처음으로 수십 대의 터키 전투기가 소규모 전투 편대를 이루며 사모스라키부터 로도스까지 아테네 비행정보구역(FIR)과 그리스 영공을 동시에 침입하기 시작했다.

당시 제28전술항공사령부(ATA) 사령관 I. 아나스토풀로스 중장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그는 KAE(공군작전센터, 오늘날의 EKAE)에 침입기 요격을 위한 전투기 즉시 발진을 명령했고, 제28전술항공사령부 소속 전 부대, 즉 공군 전 부대를 경계 태세에 돌입시켰다.

침묵한 지휘부

직후, 그가 해야 할 일대로 자신의 조치 사항을 당시 공군참모총장이었던 안토나코스 중장에게 보고하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소용이 없었다. 공군참모총장은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물론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어 그는 역시 전화로 국방장관 G. 파파도풀로스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 역시 응답하지 않았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의 결말은 원문 출처에서 계속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