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서방의 그리스 '사도' 얀노스 라스카리스, 서구가 그리스에 진 빚을 말하다

서방의 그리스  사도  얀노스 라스카리스, 서구가 그리스에 진 빚을 말하다

로도스의 함락, 그리고 잠들어 있던 유럽의 각성

동방 기독교 세계의 마지막 보루였던 로도스 섬이 1522년 오스만 제국에 함락되자, 교황과 유럽 열강은 잠시나마 눈을 뜨게 되었다. 이 각성의 배후에는 한 명의 그리스인이 있었다. 바로 니케아 제국의 황실이었던 라스카리스 왕조의 후손, 얀노스 라스카리스(Janos Laskaris)였다.

흥미롭게도 '라스카리스'라는 이름은 이후의 역사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몰타 대공방전에서 기사단을 구원하는 데 결정적인 촉매 역할을 한 또 다른 라스카리스가 있었으며, 그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은 훗날 기사단의 대수장(Grand Master) 자리에까지 올랐다.

1525년, 카를 5세 앞에서의 연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1525년 라스카리스가 독일 황제 카를 5세 앞에서 행한 연설이다. 이 연설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특별한 무게를 지닌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를 두루 인용하며 서양인들에게 그리스에 대해 — 그리고 지금까지도 — 지고 있는 빚을 상기시켰을 뿐 아니라, 비잔티움을 '그리스 정신을 파괴한 반헬레니즘적 존재'로 규정하려는 일부의 논리를 정면으로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세상을 다듬고 정화한 위대한 인물들"

"내가 고대 그리스를 말할 때, 나는 그 땅이 낳아 세상을 온갖 덕과 지혜로 다듬고 정화시킨 위대한 인물들을 말하는 것이다. 영웅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이아손 같은 이들이요. 위대한 장군이자 정치가였던 테미스토클레스, 아리스테이데스, 에파메이논다스, 왕 아게실라오스, 필리포스, 알렉산드로스, 인류 학문의 최초의 저술가들이자 시인·역사가·군주의 덕행을 기록한 보물창고였던 호메로스, 핀다로스, 헤시오도스, 크세노폰, 투키디데스, 플루타르코스, 자연을 탐구하고 신성한 것과 인간의 것을 해석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들을 따르는 수많은 이들, 수학자이자 지리학자인 히파르코스, 스트라본, 프톨레마이오스, 의학의 글을 남긴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 그리고 신학자들의 합창단이라 불릴 대(大)바실리오스, 신학자 그리고리오스,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모스를 비롯해 모든 분야와 학문에서 빛난 저명한 인사들이 있다."

유럽에 법과 종교와 도덕을 전한 스승

"그리스인들은 또한 다른 민족들, 특히 이탈리아인, 독일인, 스페인인, 프랑스인 등 유럽의 주민들을 가르침으로써 그들에게 문명을 전했다. 이처럼 그리스인들은 백성들에게 법률과 종교와 도덕을 부여했다. 폐하께서는 정의의 저울질에 있어, 모든 사람이 그리스 민족에게 지고 있는 의무를 헤아려 주시기 바란다. 진리는 그리스를 그들의 어머니로 인정하고, 앞서 언급한 인물들을 스승이자 보호자로 여기며 그들의 기억을 보존할 의무가 있음을 말해 준다."

멍에 아래에서 신음하는 후손들의 탄원

"고대 그리스의 후손들은 지금 이교도의 멍에 아래에서 고된 삶을 견디고 있으며, 자신들의 자식들이 품에서 떼겨져 이슬람으로 개종당하고 기독교도를 향한 전쟁에 내몰리는 참상을 지켜보고 있다. 그들은 밀서와 끊임없는 밀사를 통해, 은밀하고도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이곳을 오가는 나를 통해 미래의 카이사르 폐하께 탄원하여 자비를 구하고 있으며, 폐하께서 행동해 주시기를 희망하며 어떠한 위험에도 목숨을 바칠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그들이 적거나 약해서, 혹은 가진 무기와 군수품이 부족해서 이 대업의 성공에 큰 성과를 낼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불행하게도, 조국의 자유를 구걸하며 유럽을 떠돈 이 '거지 사도'는 독일 군주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