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필로멜리온 전투(1116):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의 '파라탁시스' 진형, 튀르크를 평정하다

필로멜리온 전투(1116):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의  파라탁시스  진형, 튀르크를 평정하다

비잔티움의 부흥을 이끈 알렉시오스 1세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Alexios I Komnenos)는 비잔티움 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 중 한 명입니다. 극도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제국의 지휘봉을 잡았지만, 그는 모든 방법과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문자 그대로 제국을 되살려냈습니다. 그의 주적은 노르만족을 비롯한 '라틴인들'과, 소아시아 대부분을 장악하고 이코니움(콩야)을 수도로 삼은 셀주크 튀르크였습니다.

튀르크를 향한 반격의 시작

노르만족을 상대로 한 뒤 알렉시오스는 이제 시선을 튀르크에게 돌렸습니다. 그는 제1차 십자군을 교묘히 활용해 소아시아 연안 지역을 탈환했고, 1113년 니카이아에서 튀르크의 공격을 막아내고 포이마논에서도 승리를 거두며 1116년 드디어 내륙 진출을 결심합니다. 황제의 딸이자 명저 『알렉시아드』의 저자인 안나 콤네나에 따르면, 황제의 목표는 이코니움의 탈환이었습니다.

'파라탁시스': 움직이는 사각형 요새

제국군의 정확한 병력 규모는 전해지지 않지만, 황제가 튀르크를 상대로 새로운 전술을 채택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바로 소위 '파라탁시스(Parataxis)'입니다. 파라탁시스는 본질적으로 비잔티움 보병들이 형성하는 거대한 기동 사각형 진형으로, 신속한 튀르크 경기병에게 측면을 노출하지 않도록 설계된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사각형 중앙에는 짐수레와 군수품을 안전하게 배치했고, 기병대는 네 모서리 안쪽에 위치해 반격용 예비대로 보존되었습니다. 덕분에 군대의 주력 타격 무기인 기병대가 불필요한 조기 소모 없이 보호될 수 있었습니다.

필로멜리온으로의 진군

이러한 방식으로 비잔티움군은 안전하게 필로멜리온(현 튀르키예 아크셰히르)까지 진군했고, 튀르크를 격파한 뒤 강습으로 이 도시를 함락했습니다. 필로멜리온은 이코니움 인근에 자리한 요충지였습니다. 셀주크 술탄 말리크 샤는 이에 맞서 대군을 규합했습니다. 처음에 튀르크 선봉부대가 비잔티움 진형에 접근했지만, 이를 저지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브리엔니오스의 결정적 반격

다음 날 술탄은 모든 병력을 이끌고 전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전방과 후방을 동시에 공격하라고 명령했지만 특별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오히려 비잔티움 기병대의 반격을 받아야 했습니다. 첫 번째 반격으로 튀르크군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반격은 황제의 사위이자 안나 콤네나의 남편인 니케포로스 브리엔니오스(청년)가 이끌었으며, 목표는 술탄이 직접 지휘하는 부대였습니다. 브리엔니오스와 그의 부하들은 튀르크 진영을 돌파했고, 말리크 샤는 거의 생포될 뻔했습니다. 만약 그가 포로로 잡혔다면 역사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띠었을 것입니다.

밤과 새벽의 공격도 헛수고

참패 후 튀르크군은 후퇴했지만, 밤이 되자 재정비하여 야간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새벽이 밝자 고집 센 말리크 샤는 모든 병력을 집결시켜 사각형 진형을 사방에서 공격했지만, 다시 각 개별 부대마다 격파당했습니다. 결국 다음 날 술탄은 사절단을 파견해 황제가 제시하는 조건에 따른 강화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화의 좌절과 전투가 남긴 의미

그러나 곧 술탄의 동생 마수드가 말리크 샤를 실명시키고 살해한 뒤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알렉시오스와의 강화 조약은 사실상 무효화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필로멜리온 전투는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바로 튀르크가 결코 무적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규율 있고 잘 훈련된 군대만 있다면 소아시아에서 튀르크를 영원히 몰아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알렉시오스의 파라탁시스는 크세노폰의 만인 부대가 페르시아 제국 심장부를 안전하게 통과하게 해주었던 사각형 진형을 강력하게 연상시킵니다.

필로멜리온 전투(1116):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의  파라탁시스  진형, 튀르크를 평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