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유럽이 환호할 때, 히틀러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 나라들은 어디였나?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 혹은 깊은 절망

1945년 4월 30일 오후 3시 30분, 붉은 군대의 포위 속에 놓인 베를린 총리관 지하 벙커에서 나치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전범 중 한 명이었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듯 관자놀이에 총을 겨눴다. 오랜 연인이자 몇 시간 전에야 아내가 된 에바 브라운 역시 독약을 마시고 함께 생을 마감했다. 두 사람의 시신은 총리관 정원으로 옮겨져 휘발유가 뿌려진 채 불태워졌다.

총통의 자살 소식이 퍼져나가면서 유럽 대륙 곳곳에서는 극단적인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환희, 무관심, 공허함, 심지어 깊은 절망까지. 제3제국의 시민들 사이에서조차 입장은 분열되어 있었다. 일부 평범한 독일인들은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반면 붉은 군대에 포위된 베를린 거리에서는 "히틀러가 죽었다! 전쟁이 끝났다!"를 외치며 축배를 들며 나선 이들도 있었다.

"히틀러가 머리를 맞혔으니 우리도 슬프다?"

그러나 유럽에는 히틀러의 죽음이 기쁨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나라도 있었다. 명목상 중립국이었지만 친파시스트 성향의 독재자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가 통치하던 포르투갈이 대표적이다. 이 나라는 제3제국과의 무역, 특히 텅스텐 수출로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다.

유럽이 환호할 때, 히틀러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 나라들은 어디였나?

히틀러의 죽음 이후 조의를 표한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제3제국과의 무역으로 실질적인 부를 쌓은 포르투갈의 독재자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였다.

조심스러운 추산에 따르면 포르투갈은 나치가 유럽 곳곳에서 약탈한 금까지 포함해 300톤이 넘는 금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그래서일 것이다. 국가원수 살라자르는 제3제국 지도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전국 단위 2일간의 국민 애도를 선포했다.

아일랜드 총리 에먼 드 발레라의 행보도 세계 여론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는 5월 3일 더블린 주재 독일 공사관으로 서둘러 달려가, 독일 공사 에두아르트 헴펠의 손을 잡고 히틀러의 죽음에 대한 조의를 표했다. 라도스와프 골레츠는 저서 『히틀러의 IRA, 제3제국–아일랜드 공화군 밀약』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수천만 명의 유럽인의 죽음과 수세대에 걸친 재산 파괴를 초래한 남자에게 공식적으로 경의를 표할 결례를 저지른 지도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더욱이 저자는 "1945년 4월 12일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드 발레라는 신임 대통령 트루먼에게 보낸 전보에서 고(故) 대통령을 '위대한 인물이자 고결한 지도자'라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고 지적한다.

유럽이 환호할 때, 히틀러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 나라들은 어디였나?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당시 아일랜드는 명목상 여전히 영국의 자치령이었지만 전쟁 기간 내내 중립을 선언했다는 사실이다. 영국인들의 눈에 이는 배신처럼 들렸고, 독일은 이런 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헴펠은 IRA 지도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쌓았고, 독일 첩보 요원들이 섬 곳곳을 누볐다.

결국 총리 드 발레라는 자신의 행동을 해명해야 했다. 그는 외교 의례상의 고려 때문이었다고 변명했지만, 여론의 혐오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고 이 일은 그의 생애 내내 따라다니는 오점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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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포즈난 출판사(Wydawnictwo Poznańskie)에서 간행한 라도스와프 골레츠의 책 『히틀러의 IRA』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유럽이 환호할 때, 히틀러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 나라들은 어디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