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아르카디우폴리스 전투(970): 비잔틴의 거미줄에 걸린 루스·불가리아 연합군

아르카디우폴리스 전투(970): 비잔틴의 거미줄에 걸린 루스·불가리아 연합군

배경: 니케포로스 2세의 결정적 실수

비잔틴 제국의 황제 니케포로스 포카스는 제국 북부 국경에서 불가리아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루스(러시아)의 통치자 스뱌토슬라프에게 원조를 요청했습니다. 스뱌토슬라프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 968년 불가리아를 침공했습니다.

불가리아 차르 페터는 이후 비잔틴 측이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이고 항복했습니다. 그러나 초기의 성공은 루스 통치자의 야욕을 자극했고, 그는 다시 돌아와 불가리아를 자신의 영토로 삼기로 결심합니다. 실제로 루스군은 969년 불가리아를 손쉽게 정복했습니다.

이로써 제국은 불가리아인 대신 북방에 더 거칠고 비할 데 없이 강력한 새로운 적을 얻게 된 셈입니다. 한편 니케포로스 포카스는 조카 요안니스 치미스키스에게 암살당했고, 치미스키스는 러시아의 위협을 선포하며 이에 정면으로 맞서기로 결심합니다. 이를 위해 그는 근위대 총사령관(도메스티코스)이자 자신의 가까운 친척인 바르다스 스클레로스 장군에게 스뱌토슬라프의 의도를 파악하고, 필요하면 싸울 것을 명령했습니다.

남하하는 루스군

같은 시기 루스군은 불가리아인, 페체네그족, 마자르족과 함께 필리포폴리스를 함락하고 약탈한 뒤 트라키아로 침입했습니다. 그들은 방비가 잘 되어 있던 아드리아노플을 우회해 콘스탄티노플 방향으로 나아갔는데, 아마도 수도를 정찰하고 비잔틴의 병력을 '가늠'해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루스군의 정확한 병력 규모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연대기 작가 스칠리체스는 침공군을 스뱌토슬라프 본인이 직접 이끌며 30만 8천 명을 거느렸다고 기록하지만, 이는 비현실적인 숫자입니다. 반면 발문가(사제) 레오는 3만 명의 병력이었다고 언급합니다.

교묘한 유인 작전

루스군이 트라키아로 진격하는 동안 바르다스 스클레로스는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1만~1만 2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적을 맞으러 진군했습니다. 역사가 레오 디아코노스에 따르면 비잔틴 장군은 요안니스 알라카세우스 휘하의 경기병 분견대를 앞세워 루스군을 감시하게 했습니다. 반면 스칠리체스는 바르다스가 아르카디우폴리스 성벽 근처에 병력을 배치했고, 루스군은 인근에 야영했다고 전합니다.

스칠리체스에 따르면 루스군은 비잔틴군에 회전이나 일대일 결투를 여러 차례 제안했지만, 바르다스 스클레로스는 끝내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루스군은 비잔틴군의 사기가 너무나 바닥나 자신들과 맞서는 것조차 두려워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병력을 분산시키고 주변 지역을 약탈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스클레로스는 루스군을 '잠재웠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그는 적에게 공격을 개시합니다. 비잔틴 장군은 적의 수적 우세 앞에서 무력보다 지략을 택했습니다. 소수의 병력을 세 개 부대로 나누어, 두 부대는 매복시키고 자신은(스칠리체스는 알라카세우스가 지휘했다고 기록) 겨우 2~3천 명만 이끌고 적진으로 향했습니다.

거미줄 속으로

비잔틴군이 루스 진영에 접근하자 가장 먼저 루스군의 페체네그 경기병을 공격했습니다. 비잔틴군은 후퇴하는 척했고, 페체네그족은 조직 없이 그들을 추격했습니다. 그러나 비잔틴군은 대열을 돌려 반격, 그때까지 추격해오던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 기동은 여러 번 반복되었습니다. 페체네그족이 비잔틴의 전략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많은 병사가 쓰러진 뒤였습니다. 비잔틴군을 추격하던 페체네그족은 루스군 본대와 분리되었고, 용감하게 싸웠음에도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실제로 한 페체네그 전사가 바르다스 스클레로스의 투구에 끔찍한 일격을 퍼부었지만, 스클레로스는 살아남았다고 레오 디아코노스는 전합니다. 바르다스의 동생 콘스탄티노스는 곧바로 그 페체네그 전사를 잔인하게 베어 죽였습니다.

루스군 본대가 전장에 도착하자 비잔틴군은 다시 매복지로 물러났습니다. 갑자기 바르다스는 나팔을 울리라고 명령했습니다. 신호였습니다. 매복해 있던 비잔틴군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뛰쳐나와 아무것도 모르는 적에게 덮쳤습니다.

거의 포위된 나머지 페체네그족이 가장 먼저 학살되었습니다. 생존자들은 무질서하게 도망쳤고, 이 혼란과 공포는 다른 루스군에게도 전파되었습니다. 바르다스 본인은 페체네그 지휘관 중 하나를 추격하여 끔찍한 검격으로 어깨부터 배까지 두 동강 냈습니다!

연쇄 공황과 압도적 승리

전장은 혼돈에 휩싸였습니다. 불가리아인들이 가장 먼저 공황에 빠져 무기를 버리고 도주했습니다. 불가리아인들의 패주는 다시 루스군에게 공포를 전파했고, 오래지 않아 연합군 전체가 도망자 무리로 변해버렸습니다. 비잔틴 기병들은 그들을 끝까지 추격해 자비 없이 학살했습니다.

이 승리의 규모는 손실의 현격한 차이에서도 드러납니다. 비잔틴군의 전사자는 25명(스칠리체스) 또는 55명(레오 디아코노스)에 불과한 반면, 적군은 2만 명이나 죽었으며 그중 상당수는 서로에게 짓밟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승리에도 불구하고 제국은 아직 루스의 위협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지 못했습니다. 황제 치미스키스의 친정 원정과 도리스톨론(현 실리스트라)에서의 루스군 궤멸전을 거쳐야만 만족을 모르는 스뱌토슬라프를 이 지역에서 몰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뱌토슬라프는 귀환 도중, 비잔틴의 '중개'로 페체네그족의 매복에 걸려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