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백 년간 스파르타는 그리스 최고의 병사들을 배출한 가장 호전적인 도시 국가로서 자부심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222년 셀라시아 전투에서 개혁 군주 클레오메네스가 패배하면서 이 역사적인 도시는 급격히 쇠퇴했습니다. 그럼에도 스파르타는 강대한 로마를 상대로조차 여전히 이빨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나비스의 등장과 스파르타의 재건
기원전 207년 스파르타는 아카이아 동맹에게 패배했고, 참주 마카니다스는 전사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펠롭스가 집권했으나, 왕가의 혈통을 주장한 나비스에 의해 폐위되었습니다.
나비스는 곧 아카이아 동맹과 충돌하여 패배했습니다.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 중에는 로마와 싸우던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와 동맹을 맺고 아르고스를 손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로마가 우세해지자 그는 즉시 진영을 바꿔 로마 편에 섰고, 로마는 스파르타의 아르고스 점령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로마는 곧 이 결정을 후회하게 됩니다. 동맹국인 아카이아 동맹의 압박이 거세졌고, 나비스가 함대를 창설하며 스파르타를 강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항구 도시 기티온을 요새화하여 주요 해군 기지로 삼았습니다.
동시에 나비스는 많은 헤일로타이(예속민)를 해방시켜 군대에 편입하고, 용병들과 함께 토지를 하사했습니다. 스파르타 시민들과 해방된 헤일로타이들은 긴 창을 든 사리사 창병으로 무장했습니다.
전쟁의 시작
기원전 195년, 로마 장군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는 대부분의 그리스 동맹국들의 동의를 얻어 스파르타에 선전포고했습니다. 플라미니누스는 스파르타에 사절단을 보내 아르고스의 "해방"을 요구했는데, 이는 로마 스스로 스파르타에 양보했던 땅이었습니다. 나비스가 이를 거부하자, 5만 명의 로마군과 그리스 동맹군이 그를 향해 진격했습니다.
동맹군은 스파르타가 점령한 아르고스를 우회하여 라코니아로 향했습니다. 나비스가 보유한 병력은 약 1만 5천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셀라시아에서 로마군을 기습 공격하여 작지만 일시적인 승리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적의 압도적인 수적 우위 앞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마군이 스파르타에 도착하기 직전에도 새로운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나비스의 용병들이 다시 적을 기습하여 상당한 손실을 입혔지만, 결국 스파르타 성벽 안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마군은 아밋클레이를 점령한 후 기티온으로 진격했습니다. 덱사고리다스와 고르고파스가 지휘하는 수비군은 용감하게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적의 압도적 우위 앞에서 덱사고리다스가 항복을 원하자, 고르고파스는 그를 살해하고 저항을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고르고파스의 용기와 맹신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부하들과 함께 자유롭게 떠나는 조건으로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같은 시기 아르고스 출신 피타고라스는 3천 명을 이끌고 나비스를 지원하러 급행했습니다. 나비스는 아르고스를 내주는 조건으로 로마와 강화 교섭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플라미니누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협상이 결렬되자 로마군은 스파르타를 포위했습니다.
굴복하지 않는 스파르타인들
플라미니누스는 영웅적인 도시에 대한 정규 공성전을 피하고, 즉각적인 강공을 선택했습니다. 로마군과 동맹군은 공격을 개시하여 격렬한 성벽 전투 끝에 성벽 일부를 점령하고 시내에 돌입했습니다. 그러나 좁은 거리들 때문에 진격은 더디었습니다.
점차 병력 우위를 바탕으로 로마군은 스파르타인들을 도심 한복판으로 밀어붙였습니다. 그러나 피타고라스는 스파르타인들을 격려하며, 성벽 근처 건물들에 불을 질러 로마군을 막는 화염 장벽을 만들어냈습니다. 혼란에 빠진 로마군은 막대한 사상자를 내고 도시 밖으로 철수하며 스파르타인의 불굴의 의지를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로마군은 또 한 차례 총공격을 감행했습니다. 피타고라스의 지휘 아래 스파르타인들은 필사적으로 3일간 싸우며 버텨냈습니다. 그러나 나비스는 결국 적이 승리할 것임을 깨닫고 항복을 요청했습니다.
항복과 처참한 조건
강화 조건은 가혹했습니다. 스파르타는 아르고스와 라코니아의 모든 도시를 넘겨야 했고, 함대를 인계하며 로마에 전쟁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나비스가 추진해 온 사회 개혁도 모두 철회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분열 통치" 교리를 충실히 따른 로마는 나비스를 폐위시키지 않았습니다. 동맹국이라 여기는 아카이아 동맹에 대한 견제 세력으로 나비스를 남겨두었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그리스인들의 고질적인 분열을 이용해 서로를 대립시키며 그리스를 마음대로 부렸습니다. 플라미니누스는 네메아에서 축제가 열리는 동안, 들뜬 그리스인들의 환호 속에 그리스 도시들의 "독립"을 선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