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살로니키의 구원자", 게오르크 에케르트
독일 남부일보(Süddeutsche Zeitung)는 게오르크 에케르트(Georg Eckert)를 두고 "테살로니키의 구원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전후 독일에서 큰 존경을 받았던 학자이자 교육자, 역사가였던 그는 독일 유네스코 국내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인물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에케르트는 28세의 젊은 나이로, 당시 "발칸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던 테살로니키에 주둔하고 있었다.
민족학을 전공한 젊은 에케르트는 그리스와 그리스 사람들에게 깊이 매료되었고, 전쟁이 끝나면 이곳으로 이주할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리스인들의 편에 서다
크리스티아네 슐렉터(Christiane Schlötzer)는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는 젊은 독일인이 그리스인들과 맺어 가던 개인적인 만남과 깊은 우정 덕분이다.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그리스의 일상을 소개해 주었다… 그는 그리스인들이 굶주리는 현실을 목격했고, 그들의 두려움을 몸소 느꼈다. 마침내 친구들은 그를 좌파 그리스 저항세력, 즉 게릴라 부대 ELAS와 연결시켜 주었다."
에케르트는 무겁고도 용감한 결정을 내린다. 독일 국방군(Wehrmacht)이 철수하기 직전, 그는 소수의 뜻이 통하는 동료 독일인들과 함께 좌파 저항운동 ELAS에 합류한 것이다. 1944년 11월 18일자로 사진이 부착된 ELAS 발급 신분증이 그 증거로 남아 있다.
도시를 지킨 협상
기사는 에케르트가 맡은 특별한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의 전기를 집필한 연구자 메칭이 특히 강조하는 부분이다. 에케르트는 소령 계급의 국방군 장교로서 고위 독일 장교단 안에서 여전히 행사할 수 있었던 자신의 영향력을, 그리스 저항운동과의 공모 아래, 철수하는 정복자들에 의한 테살로니키의 추가 파괴를 막는 데 사용했다.
그 대가로 ELAS는 패배한 독일군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기로 했다. 그리스 측 사료들 역시 나중에 이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물론 철수 과정이 완전히 평온했던 것은 아니다. 유류 저장고에는 불이 붙었고, 일부 선박은 침몰했다. 그러나 발전소, 상수도 시설, 항만의 중요 부두 등 도시 생존에 필수적인 기반 시설은 메칭 연구자의 말에 따르면 "에케르트가 ELAS와 진행한 협상 덕분에" 무사히 지켜질 수 있었다.
출처: D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