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호세 루라의 백색 무연화약: 스페인 군대가 놓친 혁명적 기회

19세기 중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화학자가 기존 흑색화약을 압도하는 '백색 무연화약'을 발명했다. 프랑스가 100만 프랑을 제시하고 영국도 관심을 보였음에도, 발명가는 자국 군대에만 기술을 제공하려 했다. 그러나 스페인 정부는 끝내 채택을 미루다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다. 이는 호세 루라(José Roura)의 비극이자, 스페인 근대화의 놓친 전환점이었다.

과학과 산업에 헌신한 선구자, 호세 루라

호세 루라 이 에스트라다(José Roura i Estrada, 1797~1860)는 산트 펠리우 데 기졸스 출생으로, 몽펠리에 대학교에서 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바르셀로나 상업위원회 화학학교 교수이자 바르셀로나 산업공학 초대 교장으로,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에 최초로 가스 조명을 밝힌 인물로 유명하다.(3) 증기기관 제작, 투명 비누 개발, 직물 염색·인쇄 기술 도입, 기압계·온도계 같은 물리 기구 제작, 포도주·증류주 산업 연구 등 다방면에서 스페인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하지만 그의 업적 중 가장 획기적이면서도 묻혀버린 것이 바로 '백색 무연화약' 발명이다.

베일에 싸인 화약의 정체

루라 화약의 성분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루라는 죽을 때까지 배합을 비밀로 붙였다. 프랑스의 거액 제안과 영국의 구애에도 "외국이 이득을 보느니 차라리 내 발명이 사장되길 원한다"며 스페인 군대에만 제안했다.

일각에선 염소계 화약(베르톨레 연구)이나 오장드르의 사탕수수 기반 백색화약(1849년)과 유사했을 거라 추측한다. 하지만 염소계 화약은 흑색화약의 불안정한 변종일 뿐 루라 화약의 특성과 맞지 않고, 오장드르 화약은 총열을 급속 부식시키고 충격에 예민해 군사용으론 부적합했다.

공식적으로 무연화약이 처음 제조된 건 1884년, 프랑스 화학자 폴 비에유가 니트로셀룰로스를 알코올·에테르에 녹여 만든 때다. 니트로셀룰로스(파이로실린)는 1846년 쇤바인이 발견했으나(2), 공장 폭발 위험으로 군수용 양산에 실패했다. 루라 화약의 시험 기록상 특성으로 볼 때, 니트로셀룰로스 계열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1864년 프로이센 포병 대위 슐체가 목재 셀룰로스로 만든 '목재 화약'과 유사했을 수도 있다. 이는 최초의 실용 무연화약으로 광산·사냥용으로 쓰였으나, 연소 속도가 너무 빨라 군용으론 채택되지 못했다.

기존 화약을 압도한 루라 화약의 특성

당시 기록된 시험 결과를 종합하면, 루라 화약은 다음과 같은 혁신적 특성을 지녔다.

  • 자연 상태에서 무색 투명해 '백색 화약'이라 불림
  • 흑색화약보다 가볍고, 흡습성이 낮으며, 인화성이 높고, 반동이 적음
  • 총기 내 잔류물이 거의 남지 않음
  • 총열 과열이 적어 연속 사격에 유리
  • 연기가 극히 적고 무색·무취이며 즉시 사라짐
  • 동일 위력 기준 소요량이 적어 제조·포장·수송 비용 절감
  • 소총·대포 등 기존 화약 용도 전반에 적용 가능
  • 제조 공정이 단순하고 흑색화약보다 안전하다고 발명자 주장
  • 입자 형태로 제조 가능하며, 최상급 영국 화약보다 위력 우수
  • 건조·우천 환경 모두에서 동일 발화 속도 유지, 습기 영향 없음

군부 시험과 여왕의 관심, 그리고 침묵

1847~1848년: 바르셀로나에서의 첫 검증

1847년 카탈루냐 총독 도밍고 둘세 장군이 루라의 공방을 방문, 정부 보고를 권유했다. 전쟁성 칙령으로 마드리드 '군사조사위원회' 심사가 예정됐으나, 루라가 급거 상경이 어렵다 하자 바르셀로나 주둔 장교들로 현지 시험단을 꾸렸다.

1848년 1월 4일, 아타라사나스 병영에서 첫 사격 시험이 이뤄졌다. 권총·플린트락·퍼커션락으로 흑·백 화약 동일 장약량 사격 결과, 백색 화약 탄환이 흑색 화약 대비 3배 이상 많은 종이 뭉치를 관통했다.

1월 10일 라 보타 사격장에서 박격포와 8포인트 대포 시험에서, 백색 화약은 흑색 화약의 2/3 장약량으로 60파운드 탄환을 더 멀리 날렸다. 일부는 표적 지점을 넘어섰고, 연기가 거의 없으며 반동도 현저히 적었다. 우월성이 입증된 순간이었다.

이후 2월 2일 총열 파열 시험(견딤), 마찰 감도 시험(입자 파손 없음), 3월 2일 흡습성 시험(루라 화약이 현저히 낮음) 등에서 모두 합격점을 받았다.

1848~1851년: 학계 보고와 지속적 개량

6월 상업위원회와 카탈루냐 산업연구소에 발명 보고, 바르셀로나 왕립과학예술아카데미에서 「백색 화약의 성질과 용도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후 2년간 루라는 화약을 지속 개량했고, 1851년 2월 9일 라 보르데타 공장 실험실에서 추가 시험을 거쳐 바르셀로나 일보에 성과가 보도됐다.

1851년: 마드리드에서의 최종 시험과 여왕의 참관

전 카탈루냐 총독 마누엘 구티에레스 데 라 콘차 장군(후일 마르케스 데 라 두에라)의 주선으로 이사벨 2세 여왕이 관심을 보였고, 리안사레스 공작이 참관인으로 임명됐다. 3월 20일 마드리드 카사 데 캄포, 4월 14일 경마장에서 스페인·영국 소총, 보병용 퍼커션 소총, 청동 대포, 플린트락 등 다양한 화기로 재시험이 이뤄졌고, 이전 성공이 재현됐다. 엘 포풀라르 지가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기사 작위와 런던 만국박람회, 그러나 정부의 외면

시험 성공으로 루라는 1851년 4월 26일 카를로스 3세 훈장 기사 작위를 받고, 런던 만국박람회 스페인 왕실 위원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정부의 최종 결정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조급해진 루라는 1852년 「백색 화약 공식 시험 결과 및 데이터 개요표」를 자비 출판하며 압박했다.

결국 정부는 제조를 승인하지 않았다. 이유는 불명이다. "발화 민감도가 높고 소화기에 과한 위력"이란 미확인 소문만 돌았다. 확실한 건, 이 혁명적 발명이 스페인 역사에서 잊혔다는 사실뿐이다.

영영 잃어버린 마지막 단서

1860년 루라 사후, 후손이 성분 기록을 동봉한 유리관에 화약 샘플을 보관해왔다. 하지만 1988년 주택 공사 중 분실됐다. 스페인 근대 화학사와 병기사의 중요한 퍼즐 조각, 한 과학자의 명예를 되찾을 마지막 기회도 그렇게 사라졌다.

주석

  1. 상업위원회 학교(레알 훈타 파르티쿨라르 데 코메르시오 데 바르셀로나)는 바르셀로나에 대학이 없던 시절 기술 교육을 담당했다. 펠리페 5세가 1717년 바르셀로나 대학을 폐지해 카탈루냐엔 세르베라 대학만 남았고, 원거리·교육 질 문제로 루라처럼 몽펠리에 유학을 택한 지로나 출신 청년들이 많았다.
  2.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쇤바인이 자택 실험 중 질산·황산 혼합액을 아내의 면 앞치마로 닦아 난로에 말리다 우연히 니트로셀룰로스를 발견했다. 앞치마가 부풀며 순식간에 타버린 것.
  3. 당대 기록에 따르면, 1832년 1월 30일 페르난도 7세의 차녀 루이사 페르난다 공주 탄생 축하로 마드리드 중심가(푸에르타 델 솔, 오리엔테 광장, 알칼라 거리 등)에 가스등 201개를 점등한 대성공을 전했다.

참고 문헌

  • Maria Dolors Martínez i Nó (1993). Josep Roura (1797-1860): precursor de la química industrial catalana. Associació d'Enginyers Industrials de Catalunya.
  • Pere A. Fàbregas (1993). Un científic català del segle XIX: Josep Roura i Estrada (1797-1860). Enciclopèdia Catalana.
  • Andrés Avelino Pi i Arimon (1854). Barcelona antigua y moderna. Imprenta y librería politécnica de Tomás Gorchs.
  • Pedro Roqué i Pagani (1851). Curso de química industrial. Imprenta del Porvenir de B. Bassas.
  • Antonio Elías de Molins (1889). Diccionario biográfico y bibliográfico de escritores y artistas catalanes del siglo XIX. Imprenta de Fidel Giró.
  • Charles E. Munroe (1888). Lectures on chemistry and explosives. Torpedo Station Print.
  • Arturo Masriera (1922.10.31). De la Barcelona del siglo XVIII. La Vanguardia.
  • Francisco Feliú de la Peña (1850). Fundamentos de un nuevo código militar. Imprenta de Juan Olivares.
  • Jose Oriol Ronquillo (1857). Diccionario de materias mercantiles, industriales y agrícolas. Imprenta de Agustín Gaspar.
  • Diario de Barcelona (1851.4.12). La pólvora de Roura.
  • Almanaque para todos (1860). Juan Oliveres editor.
  • La Gaceta (1851.4.9).

본 기사는 제4회 데스페르타 페로(Desperta Ferro) 역사 마이크로에세이 공모전 출품작입니다. 자료 조사, 사실 검증, 독창성은 전적으로 저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