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미국 상원이 베르사유 조약을 거부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미국 상원은 조약을 공식적으로 '거부'한 것이 아니라, 비준에 필요한 3분의 2 찬성표를 확보하지 못해 비준에 실패한 것입니다.
1919년 11월, 아깝게 무산된 비준안
1919년 11월 상원 표결에서 조약 비준안은 찬성 57표, 반대 41표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조약 비준에는 상원 의석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최소 67표가 필요했기 때문에, 찬성표가 10표 모자라 비준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비준 실패의 배경
당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파리 강화회의에서 직접 협상을 주도하며 국제연맹 규약을 조약의 핵심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공화당 지도자 헨리 캐벗 로지 상원의원을 중심으로 한 반대파는 국제연맹이 미국의 주권과 의회의 전쟁 개시 권한을 침해할 수 있다며 우려했습니다. 윌슨은 조항 수정 요구를 거의 수용하지 않았고, 양측의 강경한 태도가 맞서면서 비준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더욱이 윌슨 대통령은 조약 승인을 호소하기 위해 전국 순회 연설을 벌이던 중 1919년 10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이후 정치적 협상 능력이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그 이후의 전개
상원은 1920년 3월 조약을 다시 표결에 부쳤지만, 이번에도 역시 3분의 2에 못 미치며 비준에 실패했습니다. 결국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임에도 불구하고 베르사유 조약을 비준하지 않았고, 국제연맹에 가입하지 않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후 미국은 1921년 독일과 별도의 평화 조약을 체결하면서 전쟁 상태를 공식적으로 종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