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8세와 메리 볼린의 관계가 실제로 어디까지 진전되었는지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오랫동안 논쟁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두 사람이 육체적인 관계를 가졌다고 믿는 반면, 다른 학자들은 그렇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양쪽 모두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연인이었다는 주장의 근거
당대 기록에는 헨리 8세가 메리 볼린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언급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1527년 베네치아 대사는 "헨리 국왕은 최근 그녀의 여동생, 즉 윌트셔 백작의 딸을 새로운 정부(情婦)로 삼았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기록은 헨리가 당시 메리와 육체적인 관계를 맺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또한 메리 볼린의 초상화와 드로잉 중 일부는 암시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왕과의 로맨틱한 관계를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관계가 없었다는 주장의 근거
반면, 두 사람 사이에 실제 관계가 없었다는 증거도 존재합니다. 메리가 헨리와 관계를 가졌다면 자연스럽게 임신 기록이 남았을 텐데, 그러한 기록은 전혀 발견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메리의 남편 윌리엄 캐리는 아내와 국왕 사이의 불륜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관계가 있었다면 왕실과 귀족 사회에서 소문이 빠르게 퍼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는 의미 있는 정황 증거로 여겨집니다.
역사가 남긴 미스터리
결국 헨리 8세가 메리 볼린과 잠자리를 가졌는지 여부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역사적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양쪽 주장 모두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으며, 당시 기록의 한계로 인해 두 사람 관계의 실체를 확실하게 밝혀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메리 볼린이 여동생 앤 볼린이 왕비가 되기 전에 이미 튜더 왕조 궁정에서 주목받는 인물이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미스터리야말로 튜더 왕조의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