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7년 5월 25일부터 9월 17일까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헌회의(Constitutional Convention)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철저한 비밀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회의장은 일반인에게 폐쇄되었으며, 이는 대표들이 외부의 시선과 압력 없이 자유롭고 솔직하게 토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다만 회의 전 기간에 걸쳐 비밀 유지 수준이 항상 동일했던 것은 아닙니다.
1. 초기 단계: 엄격한 비밀주의
회의 초반에는 특히 엄격한 비밀이 요구되었습니다. 모든 대표는 비밀 유지 서약을 하고, 명시적인 허가 없이는 회의 내용을 안팎으로 절대 밝히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러한 철저한 기밀 유지는 논의 주제의 민감성, 외부 세력의 개입에 대한 우려, 그리고 대중의 감시 없이 마음껏 토론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2. 제한적인 정보 공개
회의가 진행됨에 따라 일부 제한적인 공개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과 같은 참석자들은 가끔 신뢰하는 특정 인물에게 회의의 대략적인 개요를 전달했지만, 구체적이고 상세한 내용을 알려주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3. 정보 누출
비밀 서약에도 불구하고 누출 사건은 발생했습니다. 일부 대표들은 자신의 선거구 지지자들에게 정보를 흘렸고, 이를 바탕으로 회의 논의를 엿볼 수 있는 기사와 출판물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러한 누출은 대체로 불완전하거나 단편적인 내용에 그쳤습니다.
4. 제임스 매디슨의 회의록
버지니아 출신 대표였던 제임스 매디슨은 회의 기간 내내 방대한 양의 노트를 작성했습니다. 그의 기록에는 매일의 토론, 결의안, 논쟁, 제안 등이 상세히 담겨 있어 오늘날 가장 귀중한 역사적 자료로 평가받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매디슨의 회의록이 즉시 공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기록은 수십 년간 사적으로 보관되다가 훨씬 나중에야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5. 후반부: 다소 완화된 비밀주의
회의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비밀 유지 수준은 다소 느슨해졌습니다. 헌법 초안이 거의 완성 무렵에 이르자 일부 대표들은 신뢰할 수 있는 인물들에게 헌법의 일반적인 원칙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통신 기술이 없던 시대의 비밀 유지
당시에는 빠른 통신 수단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광대한 거리에 걸쳐 정보를 신속하게 전파하는 것이 어려웠던 환경 자체가 비밀 유지에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결론
요컨대 미국 제헌회의는 대체로 비밀리에 운영되었지만, 간헐적인 정보 공개와 누출이 있었고 회의의 전체 내용은 훨씬 후에야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제임스 매디슨이 남긴 방대한 회의록은 오늘날 제헌회의 심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정보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