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히틀러 일기 위조 스캔들: 934만 마르크를 날린 '슈턴'지의 언론사 최악의 사기극

1983년, 독일 유력 주간지는 거대한 스쿱을 꿈꾸다 언론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사기극에 당했다. 능숙한 위조범과 나치 유물에 집착하는 기자가 뉴스 잡지 '슈턴(Stern)'을 완벽하게 속인 사건이다. '히틀러 일기'로 불린 가짜 문서는 잡지의 신뢰성을 순식간에 무너뜨렸고, 독일 언론사에 남은 가장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

작성자: Helene Heise, NDR.de

"F.H.! 그게 무슨 뜻이지? 총통 히틀러? 총통의 개? 총통 대본소? 설마 프리츠 히틀러였겠어?" 감독 헬무트 디틀(Helmut Dietl)은 1991년 영화 '슈톤크(Schtonk!)'에서 이 대사를 아낌없이 활용할 수 있었다. 1983년 함부르크 뉴스 잡지 '슈턴'이 내놓은 가짜 히틀러 일기만큼 코미디적 잠재력을 지닌 미디어 스캔들은 드물다. 일기 이니셜이 틀렸다는 사실 외에도 모든 요소가 어긋나 있었다. 후각이 뛰어나지만 나치 숭배에 깊이 빠진 편집자, 눈부신 솜씨의 위조범, 그리고 단 한 번의 초대형 스쿱을 너무 믿고 싶었던 출판 경영진. 이들이 함께 만들어낸 것은 독일 언론 역사상 가장 어처구니없는 실패담이었다.

히틀러 일기: 수백 페이지에 담긴 탐욕

2008년 이 스캔들을 다룬 책을 펴낸 미하엘 조이페르트(Michael Seufert)는 사적인 탐욕 또한 관계자들을 움직인 동력이었다고 지적한다. "히틀러 일기의 비밀 프로젝트로 그루너+야어(Gruner + Jahr)는 처음부터 세상을 뒤집으려 했습니다. 관계자들에게는 커리어와 권력, 그리고 무엇보다 막대한 돈이 걸려 있었습니다." 조이페르트는 스캔들 이후 '슈턴' 창립자 앙리 난넨(Henri Nannen)에게 내부 수사를 맡았던 인물로, 25년 만에 이 모험담을 재구성했다.

일기를 향한 흔적

세부 사항들은 믿기 어려울 만큼 저절로 우스꽝스럽다. '슈턴' 기자이자 자칭 '탐정'인 게르트 하이데만(Gerd Heidemann)은 1970년대 초부터 나치 시대를 소재로 삼아 왔다. 1980년, 그는 수집가 동료들의 소개로 콘라드 피셔(Konrad Fischer)라는 가명으로 나타난 위조범 콘라드 쿠자우(Konrad Kujau)와 접점을 갖게 된다. 쿠자우는 하이데만에게 히틀러 일기의 존재를 알린다. 전쟁 말기, 히틀러의 개인 노트는 비행기 추락 사고로 분실됐지만 화물은 동독의 추락 지점에서 발견됐고, 친척들의 도움으로 독일 내륙 국경을 넘어 밀반출됐다는 것이다. 처남은 박물관 관장이었고 형은 동독군(NVA) 장교라는 설정까지 덧붙였다.

출판 경영진의 승인

하이데만은 '슈턴' 현대사 부서장 토마스 발데(Thomas Walde) 박사를 이 선정적인 이야기에 합류시킨다. 일기를 확보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편집장을 건너뛰고 곧장 출판 경영진으로 향한다. 두 기자는 이렇게 비밀 프로젝트에 대한 승인을 받아냈다.

대형 스쿱에 대한 믿음이 의심을 가렸다

약 3년간 총 934만 마르크가 하이데만과 쿠자우에게 흘러 들어갔다. 위조품임을 시사하는 수많은 징후가 있었지만, 오랫동안 자신의 재정적 이익을 좇아온 '슈턴'의 수석 리서처만이 이를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부서장 발데, 편집진, 심지어 출판 경영진조차 의심의 목소리가 새로 나올 때마다 눈과 귀를 닫았다. 예컨대 'Leibstandarte Adolf Hitler' 출신 인물은 몇 가지 사실을 전혀 다르게 회상했고, 전문가들은 출처가 불분명한 위조 가능성을 경고했다. 일기가 전후 종이에 작성되었다는 정황도 발표 전부터 확인됐다. 처음 발표된 27권의 일기가 그 사이 60권으로 늘어나고 가격이 계속 올랐는데도, '슈턴' 안에서는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검증 절차를 피하다

두 기자와 출판 경영진 사이의 계약은 치명적이었다. 이 계약은 출판 수익 공유와 해외 판권 판매를 보장할 뿐 아니라, 문서 평가의 독점권을 보장하고 하이데만에게는 출처 공개 의무조차 면제해 줬다. 결국 모든 편집 검증 장치가 꺼졌다. 출판 경영진과 기자들은 정말 대단한 발견이 곧 대박 사업이 될 것이라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슈턴'의 영광, 그리고 재앙으로

1983년 4월 25일, 그 순간이 왔다. '슈턴'은 성대한 팡파레와 함께 히틀러 일기 시리즈의 첫 부분을 발행했다. 기자회견에서 하이데만은 검은 노트를 내보였고, 편집장은 3일 뒤 발행된 잡지에서 역사가 다시 쓰여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조차 심각한 우려가 제기됐다. 저명한 전문가들은 첫 순간부터 출처의 진위를 의심했다.

쿠자우의 교과서 베끼기

환상은 단 12일 만에 깨졌다. 연방기록원과 연방형사경찰청은 화학 분석과 역사 고증을 통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일기는 위조품이며, 상당히 서툰 위조품이라는 것이었다. 위조범 쿠자우는 공개된 히틀러 연설문과 전문 서적의 페이지를 베껴 온 뒤, 일상의 진부한 메모로 내용을 채웠다. 출판 경영진과 편집진은 물러서야 했고, '슈턴' 창립자 앙리 난넨은 독자들에게 사과했다.

일기의 '발견'과 사기 폭로를 다룬 두 호의 '슈턴'은 함부르크 경찰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출판 경영진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항의는 기각됐고, 영화 '슈톤크'에서 개그 소재로까지 만들어진 일기의 틀린 이니셜조차 '슈턴'의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히틀러 본인도 이 실수에 화가 났을 것이며, 편집장 펠릭스 슈미트는 'F'의 정체를 묻는 질문에 기자회견에서 그렇게 답했다고 전해진다.

하이데만과 쿠자우에 대한 징역형

유서 깊은 잡지의 이미지 훼손은 막대했다. 부수는 급락했고 신뢰도 역시 사라졌다. 결국 '슈턴'의 편집진은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다. 쿠자우와 하이데만은 사기 및 위조 혐의로 수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오늘날까지 히틀러 일기 스캔들은 경제적 이해관계와 편집적 야망이 지나치게 얽혔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결과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