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필립(Louis Philippe)은 '프랑스의 왕(Roi de France)'이 아니라 '시민왕(Citizen King)' 또는 '프랑스인의 왕(Roi des Français)'이라는 칭호로 널리 알려져 있다.
7월 혁명과 새로운 군주의 등장
1830년 7월 혁명으로 샤를 10세가 퇴위하자, 프랑스 국민들은 공화주의적 이상에 더 부합하는 새로운 군주제를 수립하고자 했다. 그 결과 오를레앙 공작 루이 필립이 새로운 왕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이전의 프랑스 군주들과 달리 '프랑스의 왕'이 아닌 '프랑스인의 왕'이라는 칭호를 스스로 채택했다.
칭호 변화가 담은 의미
이러한 칭호의 변화는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라 군주와 국민 사이 관계의 근본적인 전환을 상징했다. '프랑스인의 왕'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루이 필립은 프랑스 국민의 주권을 인정했으며, 절대권력자가 아닌 입헌군주로서의 역할을 자임했다. 즉, 그는 특정 영토나 땅을 지배하는 통치자가 아니라 프랑스 국민과 그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7월 혁명의 정신을 반영하다
'프랑스인의 왕'이라는 칭호는 군주의 권력을 제한하고 보다 민주적인 체제를 확립하려는 자유주의·공화주의 사상에서 영감을 받은 7월 혁명의 정신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나아가 루이 필립은 평범한 시민처럼 검소한 복장을 하고 우산을 들고 거리를 걷는 등 소박한 생활 방식을 보여주며 '시민왕'이라는 이미지를 한층 강화했다. 이러한 태도를 통해 그는 군주제와 프랑스 시민 사이의 화합, 협력, 공동 책임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