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잔틴 제국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는 벨리사리우스(Belisarius).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를 수복하며 제국의 영광을 되살렸던 그의 인생은 화려한 승리의 연속이었지만, 마지막 전투 역시 후세에 전설로 남았습니다. 늙은 노장은 단 300명의 병력만으로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위협한 야만인 대군을 물리쳤습니다.
다뉴브를 넘어온 야만인의 물결
서기 558년, 자베르간(Xavergan)이 이끄는 강력한 코트리구르(Kotrigur) 야만인 무리가 다뉴브 강을 건너 비잔틴 제국 영토로 진입했습니다. 불가르-튀르크 계통의 이들은 이탈리아에서 롬바르드족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비잔틴인들에게 이미 알려진 상대였는데, 당시 1만 2천 명의 야만인 전사들이 롬바르드족 진영에 합류했던 것입니다.
발칸반도를 침공한 코트리구르족은 병력을 세 갈래로 나누어 진격했습니다. 한 부대는 테르모필레까지 도달했고, 또 다른 부대는 다르다넬스 해협의 갈리폴리까지 밀고 들어갔으며, 세 번째 부대는 콘스탄티노플의 성벽 앞에까지 육박했습니다.
야만인들의 위협 앞에서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과거 수많은 승리를 안겨주었지만 지금은 냉대받고 은퇴해 있던 노장 벨리사리우스를 현역으로 다시 소환했습니다.
전설적 장군의 마지막 전투
559년, 코트리구르족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서쪽으로 약 30km 떨어진 멜란티아다(Melantiada) 마을에 진영을 꾸몄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벨리사리우스에게 이 위협을 처리해 줄 것을 요청했고, 노련한 장군은 기꺼이 임무를 수락했습니다. 그는 역시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병사 300명—아마도 예전의 전우였던 직속 호위병 부켈라리(Bucellarii)—을 이끌고 적진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자베르간은 벨리사리우스의 소규모 부대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기습을 노려 2천 기병을 이끌고 움직였습니다. 기습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자베르간은 의도적으로 숲을 통과하는 행군로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노련한 벨리사리우스는 적의 이 실수를 간파하고 기지를 발휘한 작전을 펼쳤습니다. 역사가 아가티아스 스콜라스티코스(Agathias Scholastikos)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마을 농민들에게 숲 속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흩어져 서 있으라고 명령한 뒤, 나무와 땅을 두드려 요란한 소음을 내고 먼지를 일으키게 했습니다.
소음과 먼지로 만든 '유령 대군'
이 기만 작전 덕분에 코트리구르족 지도자는 자신이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비잔틴 대군과 맞서고 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기병 활동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숲이라는 지형에서 코트리구르족은 벨리사리우스 휘하 300명의 공격을 받고 크게 패닉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우거진 나무들이 탈출로를 막아서면서, 혼란에 빠진 많은 병력이 비잔틴군의 공격에 그대로 희생되었습니다. 이 참패 이후 자베르간은 슬라브 동맹군과 함께 철수했고, 수도의 위기는 끝났습니다.
승리 이후 찾아온 불운
승자 벨리사리우스는 그 영광을 오래 누리지 못했습니다. 562년, 그는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고 투옥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결국 유스티니아누스의 사면을 받긴 했지만, 전설적인 장군은 565년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수많은 승리로 제국을 지켰던 그의 마지막 무대가 단 300명의 병력으로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오늘날까지 군사사에서 기지와 용맹의 상징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