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 조약, 기차 객차에서 체결된 조약은 몇 개?
"독일과 맺은 베르사유 조약 중 기차 객차에서 체결된 것이 몇 개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도 없다입니다. 베르사유 조약 자체는 기차 안이 아니라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체결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공식적인 종결을 규정한 베르사유 조약(Treaty of Versailles)은 1919년 6월 28일,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유명한 거울 방(Hall of Mirrors)에서 서명되었습니다. 연합국과 독일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이루어진 이 서명식은 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낸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기차 객차'라는 이야기가 나올까?
이러한 오해의 출발점은 1918년 11월 11일 체결된 콩피에뉴 휴전 협정입니다. 이 협정은 실제로 파리 근교 콩피에뉴 숲에 정차해 있던 철도 객차 안에서 연합군 총사령관 페르디낭 포슈 원수와 독일 대표 사이에 서명되었습니다.
하지만 휴전 협정과 강화 조약은 전혀 다른 문서입니다. 휴전 협정은 전선의 전투를 멈추기 위한 임시 합의였고, 베르사유 조약은 배상금, 영토 할양, 군비 제한 등 전후 질서 전반을 규정한 최종 강화 조약이었습니다. 즉, 기차 객차에서 체결된 것은 휴전 협정이며, 베르사유 조약과는 무관합니다.
거울 방이 선택된 상징적 의미
서명 장소로 거울 방이 선정된 데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1871년 프로이센이 바로 이곳에서 독일 제국의 성립을 선포했기 때문에, 프랑스는 48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독일의 패배를 공식화하며 설욕하고자 한 것입니다.
참고로 당시 휴전 협정이 체결된 그 객차는 이후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가, 1940년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격파했을 때 히틀러가 프랑스의 항복 문서를 같은 객차 안에서 받아내는 상징적 연출을 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