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했는데, 왜 비준하지 않았을까?

흔히 "미국은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미국은 1919년 6월 28일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직접 서명하여 조약의 당사국이 되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서명'이 아니라 그 다음 단계인 '비준'에서 발생했습니다.

상원의 두 차례 부결

미국 헌법상 조약은 상원 의석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비준됩니다. 그러나 미국 상원은 1919년 11월, 일부 수정 요구를 담은 '예비조항(reservations)'을 붙인 형태의 조약을 부결시켰습니다. 이어 1920년 3월에는 예비조항 없이 원안 그대로 비준하는 안마저 가부동수로 부결되면서, 베르사유 조약은 미국에서 공식적인 효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비준이 무산된 배경

국제연맹 규정 제10조에 대한 반발

가장 큰 쟁점은 국제연맹 규정 제10조였습니다. 이 조항은 회원국이 침략을 받은 다른 회원국을 군사적으로 보호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었는데, 상원 의원들은 이것이 미국의 주권과 의회의 선전포고 권한을 침해하고 불필요한 해외 분쟁에 끌려들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공화당의 반대와 윌슨의 강경 태도

상원 외교위원회를 장악한 공화당의 헨리 캐벗 로지(Henry Cabot Lodge)는 예비조항 추가를 추진했지만, 윌슨 대통령은 어떤 수정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습니다. 윌슨은 전국 순회 연설로 여론을 호소하던 중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뇌졸중을 겪었고, 협상의 여지는 더욱 좁아졌습니다. 결국 타협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조약은 좌초되었습니다.

그 이후의 처리

미국은 1921년 녹스-포터 결의안(Knox–Porter Resolution)을 통해 독일과 별도의 평화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1차 세계대전을 공식적으로 종결했습니다. 즉, 미국은 베르사유 조약 자체는 비준하지 않았지만, 별도의 길로 전후 질서에 합류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