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두 번째 통치자 3인조, '제2차 삼두정'
고대 로마에서 세 명의 통치자가 함께 권력을 쥐었던 두 번째 그룹은 바로 제2차 삼두정(Second Triumvirate)입니다. 이 체제는 기원전 43년에 공식적으로 수립되었으며, 옥타비아누스(Octavian), 마르쿠스 안토니우스(Mark Antony), 레피두스(Lepidus) 세 사람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포함되지 않았다?
종종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제2차 삼두정의 멤버로 오해되곤 하지만, 실제로 카이사르는 이 연합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함께 결성한 제1차 삼두정의 일원이었으며, 제2차 삼두정이 출범하기 전인 기원전 44년에 암살당했습니다.
제2차 삼두정의 배경
카이사르 암살 이후 로마는 다시 혼란에 빠졌습니다. 카이사르의 양자이자 후계자였던 옥타비아누스, 카이사르가 가장 신뢰하던 장군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그리고 유능한 군사 지도자 레피두스는 정적을 제거하고 국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힘을 합쳤습니다. 이들은 '국가 재건을 위한 삼두 동맹'이라 불리며, 기존의 비공식적 제1차 삼두정과 달리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합법적인 특별 권한을 부여받은 점이 특징입니다.
삼두정의 종말과 새로운 시대의 시작
그러나 세 사람의 동맹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먼저 레피두스가 실각하였고, 이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최후의 대결이 벌어졌습니다. 승리한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유일한 권력자가 되었고,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으며 로마 제국의 초석을 마련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로마의 두 번째 삼두정은 카이사르가 아닌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가 이끌었으며, 이들의 흥망성쇠는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