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역사상 가장 서툴고 무능했던 군함, 구축함 '윌리엄 D. 포터'의 기묘한 전쟁사

군사사는 무능함에 관한 기록으로 가득하지만, 그중에서도 미국 구축함 USS 윌리엄 D. 포터(USS William D. Porter)의 사례는 역사상 최악의 군사적 실수 순위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할 만하다. 초대 함장 윌프레드 월터(Wilfred Walter)는 이 모든 것을 단순히 '재수 없음'이라 불렀지만, 이 배의 파란만장한 행로는 불운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

루스벨트 대통령 호위 임무, 출항부터 삐걱거리다

포터호의 재난 연속극은 1943년 11월, 첫 실전 임무에서 막을 올렸다. 내용도 만만치 않았다. 전함 USS 아이오와(USS Iowa)의 호위를 맡아 대잠 방어를 수행하는 것. 당시 아이오와 함에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승선하고 있었는데, 요제프 스탈린과 윈스턴 처칠을 만나기 위한 카이로·테헤란 회담으로 향하는 극비리고도 중대한 일정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함이 항구를 떠나 호위 선단에 합류하기도 전에 터졌다. 누군가 닻을 완전히 끌어올리지 않은 것이다. 배가 후진 기동을 시작하자 닻이 옆에 나란히 정박해 있던 상선에 걸렸고, 상선의 선체 일부가 찢기며 난간과 구명보트까지 뜯겨 나갔다. 함장 월터는 시계를 확인하고는 아이오와 함과의 합류 시각에 늦을 것을 깨달았고, 상선 측에 간략히 사과만 하고는 항구를 급히 벗어났다. 첫 출근날 벌어진 소동을 황당하게 되새기던 신병들의 심경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첫날이니까 그래. 더는 안 나빠질 거야...' — 하지만 그들은 얼마나 틀렸는지 알지 못했다.

바다에 떨어진 폭뢰, 그리고 어뢰 오발

24시간 후 포터호는 조롱과 농담의 화살표가 된 채 선단에 합류했다. 대서양 횡단 항해 내내 선단은 독일 잠수함이 득실거리는 해역을 지나야 했다. 포터호의 임무 중 하나는 적 잠수함 공격 시 폭뢰(수심 폭탄)를 투하하는 것이었다. 11월 12일, 거대한 폭발음이 해면을 뒤흔들었다. 선단의 모든 함정이 전투 준비에 들어가고 회피 기동을 개시했다. 분명 적 잠수함이 근처에 있다는 뜻이었다. 혹시 나치가 극비 임무를 알아채고 아이오와 함에 승선한 미국 대통령의 목숨을 노리는 것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그러나 몇 분 뒤 포터호로부터 미안한 보고가 도착했다. 독일 잠수함은 없었다. 폭뢰 하나가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채 갑판에서 이탈해 바다로 떨어지면서 폭발한 것이었다. 선단을 지휘하던 어니스트 킹(Ernest King) 제독은 무전기를 집어 들고 월터 함장에게 엉망진창을 멈추고 제대로 하라고 명령했고, 함장은 "함의 성능을 반드시 개선하겠다"며 확약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런 사건들 때문에 선단 전체가 신경전에 시달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분위기를 풀어보겠다는 취지에서, 루스벨트 대통령 본인이 아이오와 함의 대공 방어 시범을 요청했다. 곧바로 기상 관측용 풍선 여러 개가 하늘로 날아올랐고, 아이오와 함의 함포가 사격을 시작했다. 루스벨트가 만족스럽게 지켜보는 가운데, 바람에 실려 풍선 몇 개가 포터호 쪽으로 흘러왔다. 여기서 월터 함장은 나쁜 이미지를 만회할 절호의 기회라 판단하고, 아이오와 함 포수들이 놓친 풍선을 포격하라고 명령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포터호는 흩어진 풍선 몇 개까지 명중시켰다. 함장의 가슴이 부풀었다. 드디어 미 해군의 웃음거리 대열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희망이었으니까.

흥을 얻은 함장은 모의 어뢰 공격 훈련을 명령했다. 물론 훈련 중에는 어뢰 발사관의 기폭 장치를 제거하기 때문에 어뢰가 실제로 발사되지 않는다. 다만 허위 발사의 계산을 정확히 하려면 조준할 목표물이 필요했는데, 가장 가까운 목표물은 다름 아닌 대통령이 승선한 USS 아이오와였다.

"첫 번째, 발사!" 갑판 장교의 외침과 함께 첫 번째 발사가 시뮬레이션되었고, 예상 항로가 확인되었다. "두 번째, 발사!" 같은 절차가 반복되었다. "세 번째, 발사!" —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휘파람 같은 소리와 함께 어뢰 한 발이 발사관을 뚫고 나간 것이다. 포터호는 아이오와 함, 그리고 루스벨트 대통령을 향해 실제 어뢰를 발사해 버렸다.

혼란 속에서 월터 함장은 아이오와 함에 즉각 우현으로 급선회하라고 무전을 보냈다. 필사적인 선회 덕분에 대통령의 휠체어—루스벨트가 앉아 있던—가 간신히 갑판에 붙어 넘어지지 않았다. 결국 아이오와 함은 스치듯 어뢰를 피했다. 함장이 할 수 있었던 말은 이것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했습니다."

알류샨 열도로 유배, 그리고 추가 사고

대통령 탑승 전함에 어뢰를 발사한 직후였음에도, 함장의 민망한 사과는 함이 즉시 선단에서 추방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함장과 승조원 전원은 군법회의에 회부되었으나, 조사 결과 실수로 판명되어 처벌은 가벼워졌다. 세 번째 어뢰의 기폭 장치를 제거하는 것을 잊은 수병 도슨(Dawson)은 징역 14년형을 받았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이 직접 특사해 주었다.

물론 아무도 포터호를 고급 임무에 다시 투입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함은 유일하게 존재 자체가 아무도 신경 쓰이지 않는 곳, 즉 알래스카의 알류샨 열도로 파견되었다. 알래스카에는 암살당할 대통령이 없으니까.

유배 생활 초기 몇 달 동안은 과거의 불명예 그림자가 걷히는 듯했다. 그러나 어느 날, 술에 취해 함에 복귀한 수병 한 명이 중포를 가지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고, 발사된 포탄은 하필 기지 사령관 저택의 정원에 떨어졌다. 마침 사령관은 다른 장교들과 그들의 아내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고 있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포터호에 남아 있던 마지막 평판은 완전히 박살 났다. 사령관 저택 정원의 꽃들과 함께. 이후 USS 윌리엄 D. 포터호에서 복무하는 것은 일종의 징계 취급이 되었다. 그럼에도 전쟁이 종반으로 치닫으며 전선의 모든 함정이 필요해졌고, 포터호는 태평양 전선으로 재배치되었다. 드디어 진짜 구원의 기회가 온 것일까? 아니었다.

오키나와에서의 마지막: 이미 추락한 비행기에게 침몰하다

태평양 전선에 도착한 뒤에도, 불운한 월터 함장의 뒤를 이어 지휘를 맡은 찰스 M. 키스(Charles M. Keyes) 중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함의 평판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오키나와 전투 개시 직후 우연히 구축함 USS 루스(USS Luce)를 향해 사격을 퍼부으면서 입지는 더 좁아졌다. 이후 포터호는 오키나와 상륙 부대의 지원 임무를 수행하며 대잠 방어를 성공적으로 운용했고, 일본기 다섯 대를 격추하는 성과도 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중에는 오인 사격으로 격추된 미군기 세 대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야기의 마지막 장은 1945년 6월 10일이었다. 포터호가 가미카제 특공기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함은 맞서 싸웠고, 일본기는 대공 사격에 피격되어 폭발하지 않은 채 바다에 추락했다. 승조원들은 들뜼었다. 드디어 상황이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추락한 가미카제기가 이상하게도 수면 아래로 잠긴 채 함을 향해 진행을 계속했다는 사실을. 결국 그 비행기는 포터호의 용골 아래를 통과하던 중 폭발했다. 3시간 후, USS 윌리엄 D. 포터호는 영원히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요컨대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서툴고 무능했던 이 함은, 자신의 재난 같은 서사에 충실하게도, 이미 격추되어 바다에 빠진 비행기에 의해 침몰하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