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커스터 폭격기의 후방 사수
니콜라스 스티븐 알케이메드(Nicholas Stephen Alkemade)는 1922년에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 그는 영국 왕립공군(RAF)에 입대하여 기관총 사수로 훈련을 받았고, 당시 아브로 랭커스터 II(Avro Lancaster II) 폭격기를 운용하던 제115폭격비행대에 배치되었다.
알케이메드가 탑승한 기체의 부호는 DS664였으며, 승무원들은 이 폭격기를 '늑대인간(Werewolf)'이라 불렀다. 후방 기관총 사수를 맡은 알케이메드는 독일 상공으로 향하는 폭격 임무를 무려 14회나 성공적으로 수행한 베테랑이었다.
베를린 공습 중 야간 전투기의 기습
그러나 그의 운명을 바꾼 것은 1944년 3월 24일 밤이었다. 이날 밤 RAF는 총 811대의 폭격기를 동원한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고, 목표는 다름 아닌 히틀러의 수도 베를린 자체였다. 격렬한 독일군의 대공포화와 매복해 있던 야간 전투기들의 위협 속에서도 공습 자체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문제는 귀환 길이었다. 슈말렌베르크(Schmalenberg) 상공에서 '늑대인간'은 독일 제6야간전투비행대 소속 게르하르트 프리드리히(Gerhard Friedrich) 조종사가 몰던 Ju-88 야간 전투기의 공격을 받았다. 정확한 조준 사격을 연달아 맞은 폭격기는 크게 손상되어 불타오르며 급강하 회전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이미 조종사 잭 뉴먼(Jack Newman)을 포함한 7명의 승무원 중 4명이 전사한 상황이었다.
낙하산이 타버린 절체절명의 순간
기체는 기수부터 꼬리까지 온통 불길에 휩싸였다. 화염은 마침내 알케이메드에게까지 번졌고, 최악의 상황은 그의 낙하산마저 태워 버렸다는 것이었다. 당시 고도는 18,000피트, 약 5,490미터. 하지만 알케이메드는 불에 타 죽는 끔찍한 최후보다는 차라리 빠르고 고통 없는 죽음을 택하기로 결심하고, 낙하산 없이 불타는 기체에서 스스로 뛰어내렸다.
눈덮인 숲이 만든 기적
그러나 하늘은 그를 살려두기로 한 듯했다. 추락하던 그는 먼저 눈으로 덮인 소나무 가지와 숲에 부딪혀 낙하 속도를 줄였고, 이어 갓 내려 쌓인 보드랍고 깊은 눈더미 위로 떨어졌다. 충격에서 정신을 차린 그는 팔과 다리가 멀쩡히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는데, 부상이라곤 단지 염좌 하나뿐이었다!
독일군조차 믿지 못한 생환기
얼마 지나지 않아 알케이메드는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지만, 독일군은 그의 이야기를 도저히 믿지 못했다. 결국 그는 게슈타포(Gestapo)에 넘겨져 심문을 받았고, 독일군이 직접 그의 기체 잔해를 조사하고서야 비로소 진실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그의 생환을 증명하는 공식 증명서까지 발급해 주었다.
알케이메드는 1945년 5월 석방될 때까지 전쟁 포로로 지냈다. 행운아를 함부로 대하기 어려웠던 독일군 덕분에 그는 나름 '특별 대우'를 받는 포로였다고 전해진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화학 산업 분야에서 일했으며, 1987년 6월 22일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