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 역사적 판결 총정리: 세계 해양 분쟁을 바꾼 11대 사례

지난주 헤이그 법원(국제사법재판소, ICJ)의 판결 낭독과 관련해 다양한 정보가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뒤흔들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공인들은 페루와 칠레 간 해양 분쟁의 핵심 쟁점은 물론, 헤이그 법원이 어떤 기구인지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교사 재평가와 사회보장 전문기관인 Spill Magisterial는 학년이 시작되면서 이 주제에 대해 질문하는 수많은 학생들을 위해, 무분별한 승리주의나 잘못된 정보에 흔들리지 않도록 검증된 자료와 데이터를 정리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언론인 조반니 히노호사(Giovanni Hinojosa)의 저작 「Hildebrandt en sus Trece」 최신판에서 발췌한 내용을 바탕으로, 지난 60여 년간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가 선고한 역사적인 해양 분쟁 판결들을 연대순으로 살펴봅니다.

영국 대 노르웨이(1951): 역사적 권리 원칙의 확립

1935년 노르웨이 정부는 북극해 특정 해역에서 자국민만 어업할 수 있는 규정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영국 어선의 접근을 차단하는 동시에, 노르웨이 주민들이 오랫동안 실질적으로 행사해 온 통제권을 합법화하려는 조치였습니다. 영국은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했으며, 북극해 전역에서의 어업 자유를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수세기에 걸친 지속적인 행사와 영국의 사실상 묵인을 근거로 노르웨이에게 분쟁 해역에 대한 특별한 권리가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이 1951년 판결은 '역사적 이용'이 국제법상 인정받을 수 있다는 중요한 선례를 남겼습니다.

유럽 북해 대륙붕 사건(1969): 공정한 경계의 시작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는 북해 해역에 대한 주권 외에도 '대륙붕'이라 불리는 해저 지형을 탐사·개발할 권리를 가집니다. 1967년 세 국가는 각자에게 귀속되는 대륙붕 면적의 경계를 정하기 위해 헤이그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덴마크와 네덜란드는 지리적으로 유리한 등거리선(海岸線에서 동일 거리를 두는 선) 기준의 분할을 제안했습니다. 두 나라는 '바깥쪽으로' 돌출된 해안선을 가진 반면, 독일은 '오목하게' 들어간 해안선 탓에 등거리선 적용 시 몫이 크게 줄어드는 구조였습니다. 독일은 "공정하고 형평에 맞는" 경계를 요구했고, 법원은 1969년 판결에서 등거리선 방식을 배제하고 지리적 불규칙성에도 불구하고 해저를 비례적으로 분할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영국·독일 대 아이슬란드(1974): 보존 우선권의 인정

1972년 아이슬란드는 증가하는 남획으로부터 해양 생태계를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대서양 연안의 어업 권리를 12마일에서 50마일로 일방적으로 확대하는 법안을 공포했습니다. 해당 해역에서 수 세기 동안 어업을 해온 영국과 독일은 헤이그 법원에 아이슬란드 법을 비난했으며, 1961년 체결된 어업 협정(아이슬란드가 12마일 한도의 해상 주권을 인정한 문서)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법원은 신중한 저울질 끝에, 원고측(영국·독일)이 해당 해역에 대한 전통적 권리를 보유하고 있으나 피고측(아이슬란드)이 자원 보존을 위한 우선권을 가진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어업 활동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방식으로 이루어지도록 명령했으며, 1974년의 이 결정은 오늘날까지 국제 어업 질서의 기준으로 존중받고 있습니다.

튀니지 대 리비아(1982): 사회경제적 주장의 기각

튀니지와 리비아는 지중해 연안 해저 주권의 한계를 정하기 위해 헤이그 법원에 출두했습니다. 해당 해역은 가스와 석유 매장량이 풍부한 지역입니다. 튀니지는 국가적으로 천연자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해저에서 더 큰 몫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한 국가가 처음으로 사회경제적 사정을 해양 주권 근거로 활용한 사례였습니다. 법원은 국가의 빈부 여부는 개별 상황에 따른 것이라며 이 기준을 단호히 기각했고, 1982년 판결에서는 양국의 지리적 특성을 반영한 해저의 비례적 분할을 확정했습니다.

캐나다 대 미국(1984): 메인만 경계 확정

1960년대 캐나다와 미국은 대서양 북부 메인만 심해에서 석유를 발견했습니다. 양국은 일방적으로 만에 대한 주권 규칙을 선포했고, 특히 유전 잠재력이 큰 조지스 뱅크(Georges Bank) 일대에서 규칙이 충돌했습니다. 미국은 자국 기업들에 대한 시추 프로그램 승인까지 진행했습니다. 1981년 캐나다는 분쟁을 헤이그에 회부했고, 3년 후 법원은 메인만을 두 구역으로 나누되 조지스 뱅크의 대부분을 미국에 귀속시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엘살바도르 대 온두라스(1992): 육지와 바다를 함께 가른 종합 판결

1969년 엘살바도르와 니카라과 간의 이른바 '축구 전쟁' 이후, 430km가 넘는 국경 지대의 주권 문제가 미해결 과제로 남았습니다. 엘살바도르는 사건을 헤이그에 제소하고, 온두라스와의 육상·해상 경계를 모두 법원이 결정하도록 요청했습니다. 육지 경계에 관해서는 분쟁 지역의 62%를 온두라스에 할당하고, 엘 티그레 섬의 주권도 온두라스에 귀속시켰습니다. 해상 주권에 대해서는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그리고 분쟁에 연루된 또 다른 이웃 니카라과가 공유하는 폰세카 만에 대해 세국의 공동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이 역사적 판결은 1992년에 선고되었습니다.

덴마크 대 노르웨이(1993): 얀마옌 섬을 둘러싼 어업 분쟁

북극권 그린란드 해에서 계속된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어업 분쟁은 1988년, 덴마크가 헤이그 법원에 제소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얼어붙은 지역에서 어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약 5만 5천 명의 덴마크인들은 고래와 물개 사냥을 위해 해안으로 찾아오는 노르웨이 어부들의 활동 중단을 요구했습니다. 노르웨이는 자국령 얀마옌(Jan Mayen) 섬이 분쟁 해역 바로 앞에 위치한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고, 덴마크는 "그 섬에는 겨우 25명만 거주한다"고 반박했습니다. 1993년의 헤이그 판결은 분쟁 해역의 3분의 2를 덴마크에 배정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카타르 대 바레인(2001): 가장 오래 지속된 분쟁의 종결

카타르와 바레인 간의 분쟁은 헤이그에서 해결되기까지 거의 10년이라는 최장 기간을 기록했습니다. 페르시아만의 두 아랍 국가는 1991년 이 사건을 통해 해양 및 영토 경계를 확정하고자 했으며, 분쟁 지역은 탄화수소 자원이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영토 문제에 관해 법원은 2001년 판결에서 주바라(Zubarah)와 파슈트 앗 디발(Fasht ad Dibal) 지역의 주권을 카타르에, 하와르(Hawar) 섬과 키타트 자라다(Qit'at Jaradah) 섬은 바레인에 귀속시켰습니다. 걸프 해역에 대해서는 등거리 원칙을 적용해 양국 간 수역을 분할했습니다.

니카라과 대 온두라스(2007: 어업 허가는 경계 조약이 아니다)

니카라과는 온두라스가 콜롬비아와 체결한 양자 조약을 문제 삼아 헤이그 법원에 소를 제기했습니다. 해당 조약은 니카라과의 해양 주권이 15도선까지만 확장된다고 규정했지만, 자국 주권이 17도선까지 미친다고 믿었던 니카라과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분쟁이 진행되는 동안 온두라스 정부는 니카라과가 자국 영역으로 간주하는 해역에서의 어업 및 석유 탐사 허가를 상대국에 발급한 바 있습니다. 법원은 이러한 허가가 국경 경계 조약의 효력을 가지지 않는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중요한 선례가 되었습니다. 국제법 전문가 파비안 노박(Fabián Novak)은 "헤이그는 어업이든 해양 탐사든, 어떤 협정이라도 경계 조약으로 간주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고 설명합니다. 최종적으로 2007년 판결은 카리브해에서 니카라과와 온두라스의 관할 수역을 등거리선으로 균등하게 나누는 방식으로 분쟁을 종결했습니다.

루마니아 대 우크라이나(2009): 흑해의 마무리

2004년 루마니아는 소련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현안인 우크라이나와의 해양 분쟁 해결을 위해 헤이그 법원에 항소했습니다. 양국은 흑해 주권을 놓고 오랜 기간 대립해 왔으며, 가스와 석유가 풍부한 해역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법원은 5년간의 심의 끝에 양국 간 해상 국경을 등거리선으로 획정해야 한다고 판결했고, 이는 분쟁 해역(약 12,000㎢)의 약 80%를 확보한 루마니아에 유리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흑해 한가운데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 스네이크 섬은 우크라이나에 귀속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