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와 글라스노스트(Glasnost)는 1985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추진한 개혁 정책입니다.
1991년 러시아, 물품이 바닥난 상점의 모습.
페레스트로이카란?
페레스트로이카는 '재건(개혁)'을 뜻하며,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레닌이 확립한 경제 중앙집권 체제를 종식시키는 것을 핵심으로 했습니다.
소련 경제는 국가가 전체적으로 계획했으며, 사유재산은 인정되지 않았고 공산품과 농산물의 가격 역시 정부가 일괄 결정했습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경쟁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이 굶주리지 않는다고 해도 물품의 다양성이나 풍요로움은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국가 투자의 대부분은 중공업·무기 산업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다음과 같은 조치를 통해 소련 시장을 점진적으로 개방해 나갔습니다.
- 경제 부문 보조금 축소
- 국가 주도 경제 계획의 폐지
- 대외 무역 자유화
- 생산량 제한 철폐
- 외국 제품 수입 허용
- 무기 생산 감축
페레스트로이카가 실패한 이유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는 여러 요인으로 인해 러시아 경제 개방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자유주의 성향 정치인과 공산주의 강경파 모두가 이러한 조치를 수용하는 데 저항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로, 러시아 산업은 이미 서구에 크게 뒤처져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국가 보조금을 잃으며 경쟁력을 상실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농촌 지역의 행정적 혼란으로 식량 부족 사태가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불만과 반발이 커졌습니다.
글라스노스트란?
글라스노스트는 '개방(투명성)'을 의미하는 정책으로, 소련 국민을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아울러 공산당원들 사이의 만연한 부패를 근절하고자 하는 의지도 담겨 있었습니다.
이러한 조치들은 당시 진행 중인 변화에 대해 국민들이 자유롭게 논의할 공간을 열어주었고, 결과적으로 소련 해체의 중요한 토양이 되었습니다.
글라스노스트의 주요 조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정치범에 대한 사면
- 굴라크(수용소) 제도의 공식적 종식
- 언론과 예술 활동에 대한 검열 폐지
- 종교 단체의 활동 자유 보장
- 일당 독재 체제의 종식
- 스탈린 통치기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의 결과
1988년 고르바초프는 유엔 연설에서 "모든 국가는 외세의 간섭 없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발언은 동유럽 국가들에 예상치 못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듬해인 1989년, 폴란드·헝가리·동독·체코슬로바키아·불가리아에서는 공산주의 정권이 평화롭게 무너졌습니다.
루마니아에서만 군과 국민 간의 유혈 충돌이 벌어졌고,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대통령과 그의 아내가 처형되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1989년 말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면서 독일 통일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그 결과 1990년 10월 독일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재통일을 이루었습니다.
한편 소련 본토에서는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 과거 병합된 발트 3국을 비롯한 여러 공화국의 독립 움직임이 거세졌습니다.
결국 국민투표를 거쳐 소련은 1991년 해체를 결정했고, 고르바초프는 같은 해 말 소련 대통령직에서 사임하며 개혁의 막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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