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샤프스 소총(Sharps Rifle):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전설적 단발 라이플

샤프스 소총(Sharps Rifle):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전설적 단발 라이플

샤프스 소총이란?

샤프스 소총(Sharps Rifle)은 1848년 북아메리카의 총포 제작자 크리스천 샤프스(Christian Sharps)가 설계한 단발식 후장 장전 소총입니다. 이 총은 '폴링 블록(falling block)'이라 불리는 매우 신뢰성 높고 견고한 폐쇄 방식을 기반으로 합니다. 다양한 형식과 구경으로 생산된 샤프스 소총은 뛰어난 신뢰성과 우수한 명중률로 오랫동안 명성을 유지해 왔으며, 지금도 그 평판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군용 샤프스 소총

1848년부터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의 샤프스 라이플 제조회사(Sharps Rifle Manufacturing Co.)가 생산한 샤프스 소총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와 전후에 걸쳐 사용되었습니다.

1861년 12월, 전쟁 발발 8개월째에 북군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돌파구가 절실해진 시점, 육군부의 소화기 전문가 하이럼 버던(Hiram Berdan)에게 7발 연속 발사가 가능한 스펜서 연발소총의 시험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시험 도중 탄피가 파열되면서 뜨거운 가스가 그의 눈을 향해 분출되는 사고가 일어났고, 버던은 1848년부터 그 자질이 널리 알려져 온 샤프스 소총을 더 선호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부대에는 스프링필드 M1855와 그 후속 모델인 스프링필드 M1861을 능가하는 연발소총이 필요했습니다. 스프링필드 소총은 확실히 효과적이지만 단발식이었고, 샤프스 소총 역시 후장식이라 해도 매 발사 후 재장전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북군 당국은 스펜서 소총을 선택하게 됩니다.

반면 정밀한 가공에서 비롯된 높은 가격, 무게(4.3kg), 전장(1.20m), 원거리 명중률, 빠른 발사 속도(분당 8발, 숙련된 사수라면 10발까지 가능), 그리고 뛰어난 신뢰성 덕분에 버던은 연방 군수국에 샤프스 소총을 북군 내 선발된 명사수들에게만 지급할 것을 권고했고, 이들은 미국 저격병 연대(US Sharpshooters) 2개 연대로 조직되었습니다.

표준형(다양한 구경과 조준 장치 변형이 존재했으며 상당수는 주문에 따라 맞춤 제작됨)의 샤프스 소총은 .52구경(13.2mm)으로, 흑화약 80그레인(5.2g)을 담은 종이 탄약통을 사용했습니다. 총구에서 370그레인 납탄은 초속 약 370m(1,200ft/s)에 도달했습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탄도 성능이 크지 않지만, 샤프스 소총은 460m(500야드)에서 매우 효과적이며, 엘리트 사수의 손에서는 910m(1,000야드) 거리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것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엎드린 자세(저격수가 선호하는 자세)에서도 손쉽게 재장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같은 자세에서 재장전이 어렵고 오래 걸리는 전장식 머스킷 소총과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게티즈버그 전투와 샤프스 소총

게티즈버그 전투 2일차, 샤프스 소총으로 무장한 미국 제2저격연대 분견대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리틀 라운드 탑(Little Round Top) 고지에 배치되었습니다. 조슈아 로렌스 체임벌린 대령이 마른 돌담 뒤에 은폐시킨 저격수들은 메인주 제20자원보병연대의 승리적인 총검 반격 이후 후퇴하던 앨라배마·텍사스 출신 남군 병력 사이에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은 북군 방어선의 취약한 구역에 대한 남군의 공격을 좌절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방어선 좌익을 굳게 지키는 리틀 라운드 탑을 북군이 사수한 것은 게티즈버그 승리의 요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한편 남군 저격수들이 사용한 위트워스(Whitworth) 저격소총은 영국에서 생산된 강선포(rifled musket)였습니다. 84cm(33인치)의 작은 구경 총열 덕분에 900~1,500야드 거리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샤프스 소총에 맞서기 위해 남부 '저격수들(sharpshooters)'은 영국에서 구입한 위트워스 저격소총을 사용했습니다. 스포츠실베이니아 전투에서 1,000야드 거리에서 존 세지윅(John Sedgwick) 장군이 전사한 것이 아마도 이 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면 아이러니하게도 남군 사수가 적에게서 노획한 샤프스 소총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남군은 무기를 비롯한 각종 물자를 '양키에게서 얻은' 물건으로 상당 부분 충당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샤프스 소총에는 '비처의 성경(Beecher's Bibles)'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1856년 헨리 워드 비처 목사(『톰 아저씨의 오두막』의 저자 해리엇 비처 스토의 오빠)는 캔자스의 반노예제 동지들에게 샤프스 소총을 담은 상자들을 '성경'이라고 표기해 보낸 것입니다.

민간용 파생 모델

남북전쟁이 끝난 후 약 10만 정이 생산된 샤프스 소총의 잉여 물량은 장거리 스포츠용 또는 사냥용 무기로 개조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민간용 샤프스 소총의 생산은 한동안 계속되었으며, 1881년 회사가 문을 닫기 전 마지막 주력 모델인 샤프스 보차르트 M1878(Sharps Borchardt Model 1878)로 이어졌습니다. 이 역시 단발식 폴링 블록 방식이었지만 해머가 없는(내장식 해머) 구조였으며, 대형 사냥감용 최강급 중앙 격발 탄약을 사용했습니다. 다만 이미 끝나버린 들소 사냥의 열풍에는 너무 늦게 등장한 셈이었습니다.

특히 들소 사냥꾼들을 겨냥한 신규 또는 개조형 샤프스 소총은 당시 알려진 가장 강력한 흑화약 탄약, 예컨대 .50-90 샤프스를 발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고위력 탄약(.50구경 납탄을 90그레인의 흑화약으로 추진)은 들소 사냥용으로 만들어졌으며, 림드(rimmed) 탄피의 길이는 64mm(2.5인치)로 폴링 블록 방식이 탄약 길이를 제한하지 않았고, 거의 원통형에 가까워 야영지에서도 손쉽게 재장전할 수 있었습니다.

들소 사냥꾼들의 무기가 가져온 효율적인 학살은 원주민들의 절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바로 1874년 에이도비 월스 제2차 전투(Second Battle of Adobe Walls)와 1877년 버팔로 헌터 전쟁(Buffalo Hunters' War)입니다.

에이도비 월스 제2차 전투에서 코만치족의 공격이 요새 담벼락에 닿을 때쯤, 포위된 들소 사냥꾼들은 먼저 권총으로 응사한 뒤 후퇴하는 원주민들에게 샤프스 소총을 발사했습니다. 공성전 3일째 되는 날, 코만치족이 새로운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때 샤프스 소총으로 무장한 스카우트 빌 딕슨(Bill Dixon)이 1,538야드 떨어진 곳에서 전사 한 명을 사살했습니다. 원주민들은 이후 작은 요새 에이도비 월스에 대한 공성전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