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크레타 문명과 미케네 문명: 그리스 문명에 앞선 에게해의 두 위대한 문명

크레타 문명과 미케네 문명: 그리스 문명에 앞선 에게해의 두 위대한 문명

글 · 클라우디오 페르난데스(Cláudio Fernandes)

그리스 문명의 여명을 연 두 문명

크레타 문명(미노아 문명)과 미케네 문명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그리스 최남단 일대에서 발전한 고대 문명이다. 이 두 문명은 테베, 아테네, 스파르타 등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폴리스)가 전성기를 구가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에게해 세계를 주도하며 화려하게 존재했다.

크레타 문명은 에게해에 자리한 크레타 섬에서 꽃피었으며, 이곳에 문명을 세웠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미노스 왕(King Minos)의 이름을 따 '미노아 문명'이라고도 불린다. 반면 미케네 문명은 아테네 인근에 위치한 도시 미케네(Mycenae)를 중심으로 그리스 본토에서 성립되었다.

노소스 궁전, 크레타 문명의 심장부

크레타 문명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한 도시는 노소스(Knossos)였다. 이 도시에서 왕의 궁전은 모든 도시 조직과 질서가 출발하는 핵심 축이었다. 노소스 궁전은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기념비적 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 수준의 공학 기술이 집약된 복합 건축물이기도 했다. 궁전 내부에는 테라코타 관을 이용해 수 킬로미터 밖에서 물을 끌어와 공급하는 수로 시설이 갖춰져 있었고, 왕실 가족과 도시 행정을 담당하던 관료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었다. 또한 궁전 내 방과 회랑의 벽면에는 프레스코(fresco) 기법으로 정성껏 그린 벽화가 장식되어 있어, 오늘날까지도 그 예술성을 짐작할 수 있다.

크레타 문명의 종언

고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크레타 문명이 대략 기원전 1450년경에 몰락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 무렵 노소스 도시는 거대한 화산 분화, 혹은 미케네 세력의 약탈과 침공 중 하나에 의해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원인이든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한 해양 문명의 시대는 여기서 막을 내렸다.

미케네 문명의 형성과 절정

미케네 문명은 기원전 1600년경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기원전 1400년에서 1230년 사이에 절정기에 도달했다. 미케네인들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남유럽으로 이주 물결을 일으킨 인도유럽계 부족들의 후손이었다. 이후 그리스의 다른 문명을 세워나간 도리아인(Dorians), 이오니아인(Ionians), 아이올리아인(Aeolians), 아카이아인(Achaeans)과 마찬가지로, 미케네인 역시 이러한 대이동의 산물이었다.

거대한 돌을 쌓아 올린 '사자의 문(Lion Gate)'과 벌집 모양의 돔분묘(토로스 묘)로 유명한 미케네는 강력한 군사 왕국으로 성장했으며,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트로이 전쟁의 배경으로도 자주 언급된다. 또한 미케네인들은 초기 그리스어를 선형문자 B(Linear B)로 기록하며 당대 최고의 문자 문화를 꽃피웠다.

크레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그리고 붕괴

도리아 부족에게 정복당하기까지 미케네인들의 행정·경제·문화 전반의 구조는 그들에게 예속되었던 크레타 문명으로부터 계승된 것이었다. 왕의 궁전이 모든 권력과 생활의 중심이 된다는 특징 역시 미케네 사회에 그대로 나타난다. 그리스 사상 연구의 권위자 장피에르 베르낭(Jean-Pierre Vernant)은 미케네 왕권의 성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원전 12세기, 본토 그리스로 쏟아져 들어온 도리아 부족의 압박 속에 미케네 세력이 붕괴했을 때, 필로스와 미케네를 번갈아 집어삼킨 불길 속에서 소멸한 것은 단순한 한 왕조가 아니었다. 영원히 파괴된 한 형태의 왕권, 궁전을 중심으로 조직된 사회 생활의 전체 방식이 결정적으로 청산되었으며, '신성한 왕'이라는 존재가 그리스의 역사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미케네 체제의 붕괴는 그 결과에 있어 정치사·사회사의 영역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 VERNANT, J.-P., 『그리스 사유의 기원』(As origens do pensamento grego), 상파울루: Difel, 1984, 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