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에다(Al-Qaeda)는 오사마 빈라덴이 1988년에 창설한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으로, 미국 9·11 테러를 비롯한 여러 대형 테러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악명 높습니다.

알카에다 핵심 요약
알카에다는 1988년 오사마 빈라덴과 압둘라 아잠이 소련군을 아프가니스탄에서 몰아내기 위해 창설한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입니다.
창설 초기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무기와 훈련 혜택을 누렸습니다.
1991년 걸프전 이후 아라비아 반도에 주둔한 미군의 존재는 알카에다가 미국에 대한 공격 캠페인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영토에서 발생한 동시 다발 테러를 기획하고 실행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은신하기 위해 탈레반의 지원과 보호를 받았습니다.
2011년 빈라덴 사망 이후 조직은 크게 약화되었지만, 활동이 완전히 종료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알카에다란 무엇인가?
알카에다는 '기지' 또는 '근거지'라는 의미를 가진 아랍어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오사마 빈라덴이 1988년에 창설한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슬람의 적이라고 판단하는 세력을 공격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조직은 소련군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축출하기 위한 전쟁 과정에서 탄생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창설 초기에는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았지만, 1991년 걸프전 직후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미군이 아라비아 반도에 주둔하게 되자 알카에다는 미국을 적대시하기 시작했고, 미국 정부 및 관련 세력들을 상대로 테러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알카에다의 주요 특징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대한 극단적 해석
아랍 세계 내 서구적 영향력에 대한 강한 적대감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 않는 글로벌 차원의 활동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로부터 공식적인 테러 조직으로 지정됨
알카에다의 탄생 배경
1979년 소련은 친소 성향의 아프간 인민민주당(PDPA)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습니다. 이 정권은 국가 개혁을 추진하려 했지만, 아프가니스탄 국민저항운동(MNRA)은 이러한 변화에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이 저항 운동은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친소련 정부를 전복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는 냉전 체제로 양분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소련에 맞서 싸우는 MNRA를 지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자헤딘(mujahidin), 즉 스스로를 '성전의 전사'라 칭한 이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을 몰아내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그중에는 압둘라 아잠과 오사마 빈라덴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젊은이들을 무자헤딘으로 모집하고 '이슬람의 적'과 싸울 병력을 양성하는 단체인 마크타브 알 키드마트 릴 무자히딘 알 아랍(MAK)을 설립했습니다. 이 아프간 저항 세력은 미국으로부터 훈련과 무기를 지원받았습니다.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자, 아잠과 빈라덴은 MAK를 알카에다로 개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참고로 아잠은 1989년에 암살당했는데, 폭탄 테러에 빈라덴이 연루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알카에다의 활동 방식
알카에다는 폭탄 테러를 주된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조직의 일부 대원들은 자살 폭탄 테러범으로 훈련받는데, 이들은 천국에서의 보상을 믿으며 신체에 폭탄을 부착한 채 최대한 많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집니다.
9·11 테러
알카에다의 가장 잘 알려진 행보는 단연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입니다. 조직의 테러범들은 민항기 네 대를 납치해 미국의 상징적인 장소들에 충돌시켰습니다. 세계무역센터(WTC)와 펜타곤이 주요 표적이었으며, 나머지 한 대는 승객들이 테러범을 제압하면서 펜실베이니아주에 추락했습니다. 당시 이 마지막 비행기의 목적지는 백악관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국 본토에 대한 이번 공격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즉각적이고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알카에다가 테러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마자, 백악관은 조직원들을 격퇴하고 오사마 빈라덴을 체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2001년 말 시작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알카에다의 수장을 붙잡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빈라덴이 파키스탄 은신처에서 사살된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1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습니다.
알카에다와 탈레반의 관계
알카에다와 탈레반은 1970년대 말부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두 조직은 소련군에 맞선 아프간 저항 운동에 함께 참여했으며, 외세에 맞서 싸우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훈련과 무기를 지원받았습니다. 1996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집권에 성공하자, 알카에다는 탈레반의 지원과 보호를 받으며 아프가니스탄 땅에 머물며 새로운 테러를 기획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관계가 2001년 말 미국이 두 조직에 대한 전쟁을 개시한 명분이 되었습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며 테러 조직에게 은신처를 제공했기 때문에, 미군은 알카에다를 와해하기 위해 탈레반을 권력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미군은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했지만, 지도자 빈라덴의 체포에는 실패했습니다. 세계 최강의 전력을 보유하고도 알카에다의 수장을 찾아내지 못한 미군은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결국 2011년에야 오사마 빈라덴은 미군에 의해 사살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Hamid Mir /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