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알베르트 괴링… 히틀러의 심복 헤르만 괴링의 형제였던 나치 저항가!

알베르트 괴링… 히틀러의 심복 헤르만 괴링의 형제였던 나치 저항가!

1895년 베를린에서 태어난 알베르트 괴링(Albert Göring)은 다섯 자녀 중 막내로, 세 아들 중 가장 어린 아이였습니다. 그의 형은 바로 히틀러의 심복이자 독일 공군(Luftwaffe) 총사령관으로 악명 높았던 헤르만 괴링(Hermann Göring)입니다. 일부 자료에 따르면, 알베르트는 어머니가 유태인 출신인 헤르만 폰 엡스타인(Hermann von Epstein)과의 관계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집니다.

2016년에는 그의 딸이 엡스타인이 실제로 아버지의 친부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알베르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당시 그의 형 헤르만은 이미 나치당 간부이자 히틀러의 측근이었고, 이후 항공부 장관으로 임명됩니다.

형과 달리 나치에 맞서다

그러나 알베르트는 형과 정반대로 히틀러와 나치 정권을 극도로 혐오하며 살아갔습니다. 그의 첫 번째 저항 행위는 돌격대(SA)가 유태인 여성들에게 굴욕을 주기 위해 강제로 거리 청소를 시킬 때 시작되었습니다. 알베르트는 그들 곁에 무릎을 꿇고 함께 거리를 닦았습니다.

현장의 지휘관은 그를 즉시 체포하려 했지만, 이름이 '괴링'이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었습니다. 알베르트를 설득할 수도 없었고, 괴링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굴욕시킬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휘관은 유태인 여성들이 현장을 떠나도록 명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태인들의 생명을 구하다

알베르트의 중재 덕분에 나치 정권에 의해 체포되었던 오스카 필처(Oskar Pilzer)라는 유태인 고용주도 석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필처와 그의 가족 전체가 독일을 탈출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는 다른 유태인 가족들에게도 아낌없이 같은 도움을 건넸습니다.

형 덕분에 점령된 체코슬로바키아로 파견된 그는 슈코다(Škoda) 공장의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파괴 공작(사보타주)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저항 조직과 접촉했습니다. 형의 서명을 이용해 수많은 사람들이 탈출하거나 석방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또한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을 공장 노동력이라는 명목으로 데려와 석방시키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뉘른베르크 재판에 소환되었지만, 그가 구해줬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옹호 증언을 하면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저주받은 이름, 잊혀진 영웅

독일에서 자유의 몸이 된 그에게 '괴링'이라는 이름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습니다. 그는 1966년까지 가난 속에 살았으며, 죽기 전 연금을 받기 위해 자신의 집주인과 결혼하기도 했습니다.

알베르트 괴링의 활동은 2000년대에 들어 한 영국 역사학자에 의해 재조명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형의 악명 높은 이름 뒤에 숨겨졌던 그의 용기 있는 저항은 이제야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