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프레스테스 종주단: 브라질 구공화국에 맞선 2만4000km의 군사 혁명 행군

프레스테스 종주단(Coluna Prestes)은 1925년부터 1927년까지 브라질에서 전개된 정치·군사 운동으로, 구공화국(Old Republic)의 정치 노선에 정면으로 도전하기 위해 일어났습니다.

프레스테스 종주단: 브라질 구공화국에 맞선 2만4000km의 군사 혁명 행군

글: Me. Cláudio Fernandes

프레스테스 종주단의 결성 배경

이른바 '프레스테스 종주단'은 1925년에서 1927년 사이에 활동했으며, 주요 지도자가 가우초(히우그란지두술) 출신 군인 루이스 카를로스 프레스테스(Luís Carlos Prestes)였기 때문에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텐엔티즘(Tenentismo, 중위 운동)에 속한 군인들의 두 개 혁명 전선에서 비롯되었는데, 하나는 상파울루, 다른 하나는 히우그란지두술 주에서 활동했습니다. 이들의 핵심 목표는 대통령 아르투르 베르나르지스(1926년까지 집권)와 워싱턴 루이스(1930년 혁명으로 축출됨)로 상징되는 구공화국의 과두정치 세력을 타도하는 것이었습니다.

1924년 혁명과 종주단의 기원

상파울루 계열의 종주단은 1924년 상파울루 시에서 일어난 혁명에 참여했던 중위들이 도주하면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연방 정부의 공세를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반군들은 히우그란지두술 방향으로 후퇴했습니다. 이곳 역시 루이스 카를로스 프레스테스 대위의 활약 덕분에 혁명의 불씨가 강하게 남아 있던 곳이었습니다. 프레스테스와 히우그란지두술 출신 반군들은 파라나 주로 진군했고, 1925년 4월 상파울루 부대와 마침내 합류했습니다.

미겔 코스타–루이스 카를로스 프레스테스 종주단

이 회합을 통해 탄생한 것이 '미겔 코스타–루이스 카를로스 프레스테스 종주단'으로, 각각 상파울루 측과 히우그란지두술 측의 대표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역사학자 보리스 파우스토(Boris Fausto)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 종주단은 국내 내륙 지방을 가로질러 놀라운 행군을 벌여 약 2만 4천 킬로미터를 이동했으며, 1927년 2~3월경 잔여 병력이 운동을 종결하고 볼리비아와 파라과이에 억류되면서 막을 내렸다. 종주단의 인원은 한 번도 1,500명을 넘지 못했으며, 잠시 합류했다 떠나는 참가자들 때문에 수시로 변동되었다. 종주단은 상당한 규모의 군사력과의 교전을 피하면서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신속히 이동했다. 농촌 인구의 지지는 기대에 불과했고, 군사적 성공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했다. 그럼에도 종주단은 통치 엘리트에 불만을 품은 도시 인구 일부 사이에서 상징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이들에게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릅쓴 영웅들처럼, 공화국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1]

종주단의 이념과 역사적 의의

프레스테스 종주단의 중위들은 2만 4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행군 과정에서 브라질 전역에 반란의 관점을 확산시키고자 했습니다. 이 관점은 공화국 초기의 '구세주주의(salvationism)'를 계승한 것으로, 헤르메스 다 폰세카(Hermes da Fonseca) 원수 전 대통령이 유포한 이념으로서, 군에 국가를 급진적으로 변혁해야 할 '사명'이 있다고 믿게 만든 사상이었습니다.

결국 종주단의 대원들은 브라질과 볼리비아, 파라과이의 국경 지대로 흩어졌고, 이들 대부분은 두 나라로 망명하여 행군의 막을 내렸습니다.

참고 자료

[1] FAUSTO, Boris. History of Brazil. São Paulo: EDUSP, 2013. pp. 266-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