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반란(Vaccine Revolt)은 1904년 11월 10일 브라질 당시 수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시작된 대중 봉기로, 보건 행정관 오스왈두 크루스(Oswaldo Cruz)가 주도한 천연두 강제 예방접종 캠페인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그 원인이었다. 이 봉기로 30명이 목숨을 잃었고, 당시 브라질의 수도에는 막대한 물질적 피해가 남았다.
배경: 20세기 초의 리우데자네이루
20세기 초 리우데자네이루는 약 8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브라질 최대 도시였다. 그러나 이 도시는 빠르고 무질서하게 팽창했고, 위생 문제는 곧 수도의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각종 전염병이 주민들을 위협하고 외국인들에게 공포를 안겼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부터 리우데자네이루의 무계획적인 성장과, 브라질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중 하나였던 이 도시를 오가던 수많은 사람의 유동은 일련의 전염병 창궐을 낳았다. 황열병, 천연두, 콜레라, 흑사병(페스트) 등 여러 질병이 도시에서 정기적으로 유행병을 일으켰다.
연구자 자이미 래리 벤치몰(Jaime Larry Benchimol)에 따르면, 리우데자네이루는 1849년, 1850년, 1873년, 1876년, 1891년에 황열병으로 수천 명이 사망하는 유행을 겪었으며, 이 문제는 20세기까지 이어졌다. 예컨대 1849년과 1850년 사이에는 약 9만 1천 명이 황열병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언급된 다른 질병들 역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큰 유행병을 일으켰다.
19세기에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전염병이 만연한 이유를 설명하는 여러 의학 이론이 발전했고, 이는 엘리트층의 인식 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일반적으로 도시 외곽 늪지에서 배출되는 병원성 가스, 리우데자네이루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한 햇빛과 바람의 침투 곤란, 그리고 도심에 거주하던 빈민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은 리우데자네이루 도심의 구조적 개조였다. 건물을 철거하고 대로를 넓히는 한편, 당시의 논리에 따르면 질병 확산에 "악습"이 기여한다고 여겨진 빈민들을 도심에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페레이라 파소스 개혁(Reforma Pereira Passos)
바로 이러한 리우데자네이루 개혁 구상을 내걸고 호드리게스 알베스(Rodrigues Alves)가 브라질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1902년부터 1906년까지 재임했으며, 임기 중 리우데자네이루 중심부에 대한 거대한 개혁이 단행되었다. 개혁의 실행을 위해 알베스는 시장 프란시스쿠 페레이라 파소스(Francisco Pereira Passos)에게 사업을 맡겼다.
이 개혁 과정에서 수천 명의 빈민이 집에서 쫓겨났으며, 약 700채의 건물이 철거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도에는 새 건물과 넓은 대로가 들어섰다. 그곳에 살던 빈민들은 먼 외곽 지역으로 밀려나거나, 리우데자네이루를 둘러싼 언덕 위로 올라가 살아야 했다.
근대화의 물결은 상인 등 중산층에도, 나아가 문화적 표현 활동에도 영향을 미쳐 경찰의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이 근대화 과정과 함께, 리우데자네이루를 괴롭히던 질병들을 근절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건학자 오스왈두 크루스의 주도 아래 도시 전역에 위생 조치가 시행되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도시 개혁이 진행된 폭력성과 권위주의가 1904년 봉기의 동기가 되었다고 본다. 반면 백신 반란이 접종 캠페인 자체와 그 추진 방식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오스왈두 크루스와 위생 캠페인
1904년 6월, 호드리게스 알베스는 리우데자네이루 전역에서 예방접종을 의무화하는 법률 제정을 추진했다. 접종의 대상은 수도를 가장 괴롭히던 질병 중 하나인 천연두였다. 재임 기간 동안 오스왈두 크루스는 황열병과 흑사병 퇴치에도 매진했다.

강제 접종 사업에 앞서, 현재 이집트숲모기(Aedes aegypti)로 알려진 스테고미아 파시아타(Stegomyia fasciata)의 번식 거점을 모두 없애기 위해 방역반이 조직되었다. '모기 잡이 부대'로 불린 이 방역반들은 리우데자네이루 곳곳을 돌며 발생 지점을 찾았고, 가정에 침입해 보수공사, 사용 금지, 심지어 철거까지 지시하는 등 권위주의적으로 움직였다.
이 과정의 폭력성은 당연히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흑사병의 경우 당국은 도시에서 쥐와 벼룩을 박멸하려 했다. 그럼에도 주민들에게 주택 보수공사를 강요하는 조치들이 이어졌다. 또 하나의 조치로는 쥐를 방역팀에 가져다주는 사람에게 보수를 지급해 쥐 사냥을 장려하는 방안이 제안되었다. 이는 오히려 많은 이들이 추가 수입을 노리고 쥐를 사육하는 역효과를 낳기도 했다.
천연두 문제와 관련해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오스왈두 크루스와 정부가 강제 접종을 추진했고, 이 안건은 1904년 10월 31일 승인되었다. 이 소식은 리우데자네이루 시민 일부에게 커다란 우려를 낳았다. 바로 이 무렵, 정부가 미접종자에게 더 많은 제한을 두는 법률을 추가로 제안할 것이라는 소문이 새어 나왔고, 모든 것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봉기의 시작
이 소문은 11월 9일 언론을 통해 알려졌지만, 강제 접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이미 6월부터 존재해 왔다. 실제로 11월 5일에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강제접종반대동맹(League Against Mandatory Vaccination)이 결성되었다.
역사학자 조제 무릴루 드 카르발류(José Murilo de Carvalho)는 접종에 대한 이러한 대중적 반발이 20세기 초의 도덕적 가치와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가장으로서 가정 침입에 느끼는 굴욕감, 그리고 당시 허벅지와 엉덩이에 백신을 접종한다는 소문처럼 접종이 여성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새 법안 소문의 유출은 국민들을 격분시켰고, 도시 거리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첫 폭동은 11월 10일 라르구 두 상프란시스코(Largo do São Francisco)에서 기록되었으며, 프라사 티라덴치스(Praça Tiradentes)까지 확산되었다. 카르발류에 따르면, 광장에서 "백신 타도!"라는 첫 함성이 울려 퍼졌다고 한다.
이후 며칠간 시위가 계속되었고, 13일에는 대규모로 번졌다. 경찰서와 병영 등에 대한 약탈이 있었을 뿐 아니라, 도시 전역에서 노면전차 파괴, 바리케이드 설치, 각종 건물의 파손이 벌어졌다. 경찰과의 충돌은 격렬하여 총격전이 벌어지고 경찰을 향해 돌이 던져지기도 했다.
시위는 리우데자네이루의 두 지구, 즉 사크라멘투(Sacramento)와 사우지(Saúde)에 집중되었다. 경찰과 군부대가 동원되어 시민을 진압했고, 심지어 다른 주의 병력까지 진압 지원을 위해 호출되었다. 대중 시위 도중에는 정부에 불만을 품은 군인들에 의한 쿠데타 시도도 있었고, 노동자들의 동원도 이루어졌다. 호드리게스 알베스 대통령은 리우데자네이루를 떠나는 것까지 고려했다고 전해진다.
결말
11월 16일 계엄이 선포되었고, 이후 대중·노동자 봉기는 급속히 힘을 잃었다. 마지막 진압 작업은 11월 23일에 이루어졌다. 백신 반란의 최종 집계는 사망 30명, 부상 110명, 아크리(Acre)로의 추방 461명이었으며, 도시 곳곳에 심각한 물질적 파괴가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접종 캠페인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천연두를 근절하는 데 성공했다.
참고 자료
BENCHIMOL, Jaime Larry. 『Urban reform and Vaccine Revolt in the city of Rio de Janeiro』, in FERREIRA & DELGADO (eds.), Republican Brazil, Civilização Brasileira, 2018.
CARVALHO, José Murilo de. 『The people against the vaccine』, in FIGUEIREDO (org.), History of Brazil for the Occupied, Casa da Palavra,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