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시(Parisii)는 오늘날 프랑스 파리 일대에 거주했던 갈리아 부족으로, 현대 도시 '파리'라는 이름의 기원이 된 민족입니다. 라틴어에서는 축약형 '파리시(Parisi)'가 사용되었으며, 프랑스어로는 '파리지앵(Parisiens)', '파리즈(Parises)' 등의 형태도 나타납니다.
부족 이름의 어원
'파리시'라는 명칭은 갈리아어 '콰리시(kwarisi)'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 단어가 몽마르트르(Montmartre) 일대의 채석장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루테티아 논쟁과 낭테르 발굴 성과
율리우스 카이사르(기원전 53년)의 기록에 따르면, 파리시의 중심 도시 즉 오피둠(oppidum, 요새화된 주거지)은 루테티아(Lutetia), 곧 오늘날의 파리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파리 시내 지하에서는 이 시기의 선사시대 유물이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이 최근에야 제시되었습니다. A86 고속도로 공사와 관련된 발굴 조사에서 낭테르(Nanterre) 지역에서 매우 중요한 초기 도시 유적이 확인된 것입니다. 파리 시테 섬(Île de la Cité)의 두 배가 넘는 15헥타르 이상 규모의 선도시(Proto-urban) 유적과 함께 전사들의 무덤, 정교한 도시 시설물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유적지는 노출된 시테 섬보다 방어에 훨씬 유리한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낭테르가야말로 여러 촌락(시테 섬 포함)이 속해 있던 본래의 오피둠이었을 가능성이 크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베르킨게토릭스와 함께한 로마 저항
갈리아 정복 과정에서 파리시는 기원전 52년 베르킨게토릭스(Vercingetorix)가 조직한 카이사르에 대한 저항 운동에 수에시오네스(Suessiones) 부족과 함께 참여했습니다.
지명에 남은 파리시의 흔적
파리시라는 부족 이름은 오늘날까지 다양한 지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파리(Paris)를 비롯해 빌파리지(Villeparisis), 코르메유앙파리지(Cormeilles-en-Parisis), 퐁트네앙파리지(Fontenay-en-Parisis), 그리고 광역 지역명인 파리지(Parisis) 지방 등이 모두 이 부족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갈리아 화폐의 백미, 파리시 스타터
파리시는 갈리아 화폐 사상 가장 아름다운 금화 중 하나로 꼽히는 '파리시 스타터(stater)'를 발행한 부족이기도 합니다. 이 금화는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메달 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당시 갈리아 부족의 높은 금속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입니다.
브리튼 섬의 또 다른 파리시
흥미로운 점은 같은 이름을 가진 또 다른 파리시 부족이 그레이트브리튼 섬, 구체적으로 잉글랜드 동요크셔(East Yorkshire) 지역에 정착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두 부족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주설 등 여러 학설이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