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살루스 전투는 기원전 48년 8월 9일, 테살리아 지방의 파르살루스 시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로, 로마 공화국을 종언으로 몰아넣은 내전의 향방을 결정짓은 사건이었다. 이 전투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정치적 라이벌인 폼페이우스, 그가 이끄는 군대, 그리고 원로원파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양군의 대치
카이사르는 테살리아의 에니페우스 강 북쪽에 진영을 설치했고, 폼페이우스의 진영은 그로부터 북서쪽 약 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양군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기동전을 오랫동안 벌인 끝에, 마침내 전투 대형을 갖추고 마주 섰다.
기병 우위를 노린 폼페이우스의 전략과 카이사르의 대응
폼페이우스는 기병 수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기에, 카이사르군 우익을 측면에서 공격하는 계획을 세웠다. 당시 그 위치에는 카이사르가 평소 가장 아끼며 함께 싸워온 제10군단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 정예 부대를 궤멸시키는 것은 폼페이우스에게 큰 영광이자 결정적 전과가 될 것이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즉각 대응했다. 그는 보병 8개 코호트(대대)를 기병대에 추가 배치했고, 폼페이우스의 기병이 돌격해 올 때마다 그들의 얼굴을 찌르라는 명령을 내렸다. 폼페이우스 측 기병 대부분은 외모에 민감한 젊은 용병들이었기에, 안면이 훼손될 것을 두려워한 이들은 순식간에 사기가 꺾이고 말았다.
전투의 경과
양군이 서로 접근하여 돌격 사거리에 들어섰음에도 폼페이우스는 돌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는 카이사르 병사들이 두 배나 되는 거리를 달려와 지친 몸으로 도착할 것이라 계산한 것이다. 그러나 노련한 카이사르의 베테랑들은 이 함정을 간파하고 중간 지점에서 멈춰 대열을 재정비했다.
전선이 맞닿으며 시작된 전투는 팽팽하게 흘러갔다. 어느 쪽도 상대의 방어선을 쉽게 돌파하지 못했다. 폼페이우스의 기병은 카이사르의 기병을 밀어냈지만, 카이사르가 미리 배치해둔 8개 코호트가 반격에 나서 폼페이우스의 기병을 완전히 흩어버렸다. 카이사르의 기병은 패주하는 적 기병을 끝까지 추격했고, 예비대였던 코호트들은 폼페이우스 군 좌익의 후방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포위된 폼페이우스 군대는 그 자리에서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전투 이후의 귀추
폼페이우스는 이집트로 피신했으나 그곳에서 암살당하는 비극을 맞이한다. 메텔루스 스키피오와 카토는 아프리카로 건너가 새로운 군대를 재편하려 했으며,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던 키케로는 물론 브루투스 역시 카이사르에게 항복했다.
그리하여 카이사르의 전쟁은 아프리카에서 계속 이어져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