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렐리아 코타는 누구인가?
아우렐리아 코타(Aurelia Cotta, 기원전 120년 ~ 기원전 54년 또는 53년경)는 고대 로마의 명문 가문인 아우렐리우스 가문 출신의 귀부인입니다. 그녀의 세 형제는 모두 집정관(콘술)에 올랐을 만큼 가문의 위상이 높았으며, 그녀 자신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3세와 결혼하여, 훗날 로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카이사르 탄생과 관련된 오해
대(大)플리니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카이사르가 제왕절개로 태어났다고 전해지지만, 이는 사실일 가능성이 낮습니다. 당시 제왕절개 수술은 산모의 생존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우렐리아는 카이사르 출산 이후에도 수십 년간 건강하게 살았으며, 성인까지 자라 결혼까지 한 두 딸을 더 두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시대인들이 남긴 평가
역사가 타키투스는 훌륭한 교육으로 자녀를 기른 모범적인 로마 어머니들의 예시에 아우렐리아를 포함시켰고, 플루타르코스는 그녀를 지극히 덕망 있는 여성으로 묘사했습니다. 이러한 평가는 그녀가 단순히 유명 인물의 어머니였음을 넘어, 스스로 존경받는 인물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과부의 삶과 아들에 대한 헌신
남편 가이우스는 기원전 85년경 집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우렐리아는 재혼하지 않고 미망인으로서 아들과 함께 살며 그의 성장을 지켜보았습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기원전 63년 아들이 최고 신관(폰티펙스 막시무스) 선거라는 어려운 도전에 나서기 위해 집을 나설 때, 아우렐리아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문 앞까지 배웅했다고 합니다.
선의의 비밀 의식에서 밝혀진 스캔들
아우렐리아는 며느리 폼페이아 술라를 면밀히 살폈던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선의 여신(보나 데아) 비밀 의식이 거행되던 밤, 남자의 출입이 철저히 금지된 집에 클로디우스가 몰래 잠입해 폼페이아를 찾으려다 아우렐리아에게 발각되면서 큰 스캔들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로마 정치계에 파장을 일으킨 유명한 에피소드로 남았습니다.
마지막
아우렐리아 코타는 클로디우스 풀케르가 살해되기 얼마 전인 기원전 53년경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녀는 아들 카이사르가 정치적 정점에 오르기 직전의 시기를 지켜본 인물로, 로마 역사에서 현모양처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