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로크로이 전투(1643년 5월 19일): 스페인 무적 테르시오의 몰락과 대콩데의 탄생

아르덴의 국경 요새, 로크로이

로크로이 전투(1643년 5월 19일): 스페인 무적 테르시오의 몰락과 대콩데의 탄생
로크로이(Rocroi)는 아르덴 고원지대, 솜브르 강과 뫼즈 강 사이의 메지에르 구역에 자리한 마을이다. 프랑수아 1세가 이곳을 요새화하기로 결정하기 전까지 로크로이는 단순한 농장 또는 작은 촌락에 불과했다. 1555년에는 신성로마제국군에게 포위당했으며, 종교전쟁 기간에는 가톨릭파와 프로테스탄트파가 이곳의 소유권을 두고 다투었다. 그러나 로크로이의 이름을 역사에 새긴 것은 1643년 5월 19일, 프랑스군과 스페인군 사이에서 벌어진 결정적인 전투였다.

혼란을 틈탄 스페인의 침공

리슐리외 추기경의 죽음과 곧 임박한 루이 13세의 서거로 프랑스 정부와 군 지휘부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 판단한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 돈 프란시스코 데 멜로는 프랑스 침공을 결심한다. 그의 계획은 로크로이를 점령한 뒤, 기즈·라카펠·라페르 등 우아즈 강 유역의 도시들을 동쪽으로 우회하여, 엔 강과 마른 강 계곡을 따라 파리로 직진하는 것이었다.

앙기앙 공작의 화려한 데뷔전

프랑스군은 앙기앙 공작(훗날의 '대콩데')의 지휘 아래 신속히 로크로이로 진군했고, 스페인군은 급히 전투 대형을 갖추어야 했다. 앙기앙 공작은 프랑스군 우익을 맡았다. 그는 기병대 총감 가시옹과 함께 적 기병대를 맹렬히 공격하여 격파했고,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적 중앙 후방으로 우회하여 승세를 타던 스페인군 좌익을 배후에서 강타해 와해시켰다.

그러나 전선 중앙에는 스페인 육군의 자랑, 유명한 '테르시오' 보병이 폰타네스 백작의 지휘 아래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포격에 흔들리고, 보병의 압박을 받고, 앙기앙 공작의 기병대에게 거듭 돌격당한 테르시오는 결국 장교 대부분과 병력 대다수를 잃고 항복했다. 이 대승은 앙기앙 공작의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유럽에 입증해 준 전투였다.

전투 이후의 로크로이

10년 후 콩데는 다시 한번 로크로이를 점령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몸을 담은 스페인 편에서였다. 프롱드의 난 이후 스페인으로 망명한 그의 행보였던 셈이다. 로크로이가 프랑스로 돌아온 것은 피레네 조약(1659년 11월) 체결 이후였다. 이후 요새는 보방(Vauban)에 의해 개축되었으며, 그 성벽은 오늘날까지도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1870년에는 프로이센군에게 포위되어 몇 시간의 포격 끝에 함락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