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아미앵의 평화(1802): 나폴레옹 시대 유럽의 짧은 휴전

1800년 마렝고 전투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호엔린덴 전투에서 모로 장군이 각각 승리를 거두고, 브륀과 뮈라가 이탈리아의 포 평원과 토스카나에서 연이어 승전하면서 제2차 대프랑스 동맹은 급속히 와해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군사적 판도의 변화는 결국 유럽 전역에 강화 분위기를 조성했고, 그 결실이 바로 1802년의 아미앵 조약이었다.

제2차 대프랑스 동맹의 해체

오스트리아는 동맹에서 이탈하여 1801년 2월 9일 프랑스와 뤼네빌 조약을 체결했다. 나폴리 역시 피렌체에서 강화에 서명했으며, 파벨 1세 치하의 러시아는 점차 프랑스와 거리를 두다가, 그의 뒤를 이은 알렉산드르 1세가 1801년 10월 10일 보나파르트와 비밀 강화 합의를 맺으면서 사실상 동맹에서 손을 뗐다.

영국의 고립과 강화 분위기

영국에서는 1801년 3월 13일 윌리엄 피트가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정국이 크게 흔들렸다. 동맹국을 하나둘 잃고 외교적으로 고립된 영국은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강화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한편 보나파르트는 이집트 원정의 결과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클레베르 장군이 암살당하고, 그 뒤를 이어 군대를 인수한 메누의 원정군이 사막 속에서 고립되면서 이집트 원정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이는 영국이 강화 협상에 나설 명분을 더욱 확고히 하는 결과가 되었다.

런던 예비조약과 아미앵 회의

강화 협상의 첫 단계인 런던 예비조약이 마침내 진행되어 1801년 10월 1일(혁명력 10년 방데미에르 9일) 서명되었다. 이어 같은 해 12월 5일부터 아미앵 회의가 개막되었다.

회의에는 프랑스 공화국, 에스파냐 왕국, 바타비아 공화국(구 네덜란드 연합주)이 한쪽에, 영국이 다른 쪽에 참석했다. 프랑스 대표단은 뤼네빌 때와 마찬가지로 조제프 보나파르트가, 에스파냐는 아자라 기사가, 바타비아는 법률가 싐멜페닝크가 각각 이끌었다. 영국 대표단은 콘월리스 경이 수행했으며, 그는 동맹국인 오스만 제국을 대신해서도 협상에 참여했다.

아미앵 조약의 체결과 주요 내용

아미앵 조약은 1802년 3월 25일(혁명력 10년 제르미날 4일)에 성립되고, 이틀 뒤인 27일 시청(호텔 드 빌)에서 정식으로 서명되었다. 이 조약은 프랑스 혁명 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유럽 열강 간의 포괄적 평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조약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 전쟁 행위로 점령한 상대방의 영토는 모두 반환하되, 트리니다드 섬과 실론(스리랑카)만은 예외로 하여 영국에 귀속시킨다.
  • 희망봉은 네덜란드(바타비아 공화국)에 반환된다.
  • 프랑스령 기아나와 포르투갈령 기아나 사이의 국경이 확정된다.
  • 이오니아 제도의 7도 공화국(Sept-Îles)이라는 공화국 지위가 인정된다.
  • 뉴펀들랜드 어업권과 생피에르미클롱의 목재 관련 권익이 획정된다.
  • 나사우 가문이 네덜란드에서 잃은 권익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진다.
  • 몰타와 몰타 기사단의 지위가 매우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몰타는 영국과 프랑스 어느 쪽으로부터도 독립하게 된다.
  • 프랑스는 나폴리와 로마에서, 영국은 포르페라이오에서 각각 철수한다.

짧게 이어진 평화의 종언

그러나 이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1803년 영국이 조약을 사실상 파기하고 프랑스에 다시 전쟁을 선포했으며, 윌리엄 피트(소 피트)가 재집권한 뒤에는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을 조직하면서 유럽은 곧 다시 대규모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었다. 아미앵의 평화는 결국 나폴레옹 전쟁 시대라는 더 격렬한 격변 앞의 짧은 숨돌림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