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 군주제의 몰락에서 로베스피에르의 최후까지

공포정치 개요

프랑스는 거대한 정치적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절대왕정의 수호자였던 국왕은 점차 무너져가는 구체제(Ancien Régime)의 상징으로 전락해갔다. 1792년 8월 10일, 산클로트(sans-culottes)들이 튈르리 궁으로 진격하여 루이 16세를 포로로 잡으면서 한 시대는 저물었다. 베르니오(Vergniaud)가 선언했듯 "군주제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고, 역사가 '공포정치(Terror)'라 부를 혼란의 시대가 열렸다.

기간: 1792년 8월 10일 ~ 9월 20일 / 1793년 9월 5일 ~ 1794년 7월 28일

주요 인물

  • 조제프 캉봉(Joseph Cambon)
  • 조르주 쿠통(Georges Couthon)
  • 조르주 당통(Georges Danton)
  • 알랭 푸케(Alain Fouquet)
  • 자크 르네 에베르(Jacques-René Hébert)
  • 장 폴 마라(Jean-Paul Marat)
  •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de Robespierre)
  • 앙투안 생쥐스트(Antoine Saint-Just)

경과

군주가 감옥에 갇히면서 왕정은 사실상 소멸했다. 입법의회는 국민공회(Convention)로 전환되어 '시민 카페(citoyen Capet)'를 심판하는 특별재판소가 되었다. 왕당파의 반격에 대한 두려움은 9월 학살과 불복속 성직자 추방 등으로 이어졌다. 1792년 9월 20일, 국왕을 해방하러 온 프로이센·오스트리아 군주국 연합군을 발미 전투에서 격파하면서 제1차 공포정치는 막을 내리고, 같은 해 9월 22일 제1공화국이 탄생했다.

그러나 프랑스 국경에 혁명의 적들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자, 몽타냐르파(Montagnards)는 국내 왕당파에 대한 본격적인 마녀사냥을 감행했다(방데, 리옹 등).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는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3월 10일에는 '혁명재판소'라 불리는 특별형사법원이 설치되었고, 21일에는 일반안전위원회 산하의 감시위원회가 만들어지며 공포정치의 체계가 갖춰졌다.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불안정이 극에 달한 가운데(1793년 7월 13일 샤를로트 코르데에 의해 마라가 암살됨), 9월 5일 공포정치가 공식적으로 선포되었다.

쿠통, 생쥐스트, 로베스피에르 등이 이끈 공공안전위원회는 혁명의 반대자들을 탄압하며 1793년 9월 17일 '용의자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자유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자유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까지도 처벌 대상으로 삼았다. 처형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급진화의 직격탄을 맞은 것은 지롱드파(브리소, 베르니오)였고, 이어 1794년 3월 에베르파가 숙청되었으며, 4월 5일에는 당통마저 처형되었다. 재판은 더욱 신속하게 처리되었고, 단두대의 칼날은 멈추지 않았다.

로베스피에르는 프레리아르 22일 법령(1794년 6월 10일)으로 공포정치를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이제 피고인들은 변호권을 박탈당한 채 파리 혁명재판소에만 의존해야 했고, 재판소 앞에는 무죄 아니면 사형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만 놓여 있었다. 그러나 테르미도르 9일(1794년 7월 27일), 지나치게 독재적이라 여겨진 공공안전위원회와 일반안전위원회 사이에 내부 항쟁이 폭발했다. 결국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단두대로 끌려갔고, 1794년 7월 28일(테르미도르 10일) 공포정치는 막을 내렸다.

결과와 영향

  • 공포정치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 중 하나로 기록된다. 혁명을 위기에서 구해냈지만, 동시에 스스로 내세우던 자유의 이념에 배신하여 실질적인 독재체제를 세웠다는 비판을 받는다.
  • 공포정치의 종식 이후 프랑스는 총재정부(Directoire) 시대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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