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공격 명령, 그리고 고립된 요새
5월 1일, 지아프(Giap) 장군은 밤 10시를 기해 총공격을 개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시 디엔비엔푸(Dien Bien Phu) 수비대에게 남은 식량은 단 사흘치였고, 탄약은 155mm 포탄 275발, 105mm 포탄 1만 4천 발, 120mm 박격포탄 5천 발에 불과했다. 첫 공격에서 저항 거점 두 곳이 무너졌지만, 비가르(Bigeard)와 랑글레(Langlais)는 기지로 낙하 투하되는 병력 보강과 식량·탄약 보급에 희망을 걸고 버틸 것을 다짐했다.
5월 6일 정오 무렵, 지아프는 카튜샤 로켓포, 이른바 '스탈린의 오르간'에 마지막 폐허를 분쇄하고 북아프리카 출신 병사들과 베트남인 부대의 대열 속에 공포를 뿌리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5월 7일 새벽, 디엔비엔푸는 놀랍게도 1,500제곱미터 크기의 직사각형으로 축소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비가르는 마지막으로 남은 M24 샤프티(Chaffee) 전차의 지원을 받으며 두 개 중대를 이끌고 또 한 번 역공을 감행했다. 오후 6시, 드디어 포성이 멎었다. 기지는 항복한 것이 아니라, 그저 완전히 짓밟혀 사라진 것이다.
56일간의 방어가 남긴 대가
디엔비엔푸 방어전 56일 동안 프랑스군의 손실은 전사자 2천여 명, 부상 및 실종자 7천 명에 달했으며, 이후 7천 명의 포로가 죽음의 포로수용소로 향하는 행군길에 올랐다. 베트민(Viet Minh) 측의 피해 또한 전사 약 8천 명, 부상 1만 5천 명에 이르렀다.
과신했던 공중 화력
프랑스 지휘부는 중형 폭격기와 전폭기의 화력에 큰 기대를 걸었다. 이들이 베트민 사단의 보급선을 파괴하고, 기지의 155mm 포 사정권에서 벗어난 적 포병 진지를 제압해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신감은 과장된 것이었다. 실제 원정군 공군은 백여 대의 작전기에 불과했고, 그중 4분의 3이 이미 디엔비엔푸에 투입된 상태였다. 수송기는 겨우 80대뿐이었고 조종사마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참호선 주변에 국한된 급강하 공격은 베트민의 치밀한 위장막 앞에서 제한적인 효과만 거두었다. 2년 전 홍강 방어선 끝의 빈옌(Vinh Yên) 전투에서 파괴적인 성과를 거뒀던 네이팜 공격 역시, 숲이 훨씬 빽빽한 이 지역에서는 위력을 잃었다. 여기에 베트민의 대공 화기(37mm 포 36문, 12.7mm 중기관총 50정)는 결코 얕볼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카스토르'와 '알바트로스': 무산된 구원 작전들
1953년 12월, 나바르(Navarre) 장군은 '카스토르(Castor)' 작전을 검토한 바 있었다. 라오스 방면에서 디엔비엔푸에 자리한 적의 후방을 타격한다는 구상이었다. 1954년 4월에도 이 작전은 여전히 진지하게 검토될 수 있었다. 3천 명의 병력, 그중 3분의 2는 라오스 경보병으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동시에 트랭키에(Trinquier) 대령의 혼성 공수 코만도 집단 산하 게릴라 부대, 몰라(Mollat) 코만도, 그리고 베트민 통제구역에서 활동하던 모든 비정규 부대를 투입하는 계획도 함께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4월 22일, 나바르는 증원 약속을 철회하고 이미 교전 중이던 부대들에게 작전의 지속 여부를 일임해 버렸다. 이 부대들은 분지 인근까지 전진해 탈출에 성한 78명을 회수했으나, 5월 7일 결국 철수 명령을 받게 된다.
디엔비엔푸 수비대 입장에서 라오스로의 돌파와 철수는 분명 큰 위험을 안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5월 3일까지는 아직 시도할 여지가 있었다. 작전은 이미 수립되어 있었고, 코드명은 '알바트로스(Albatross)'였다. 모든 포병과 전투 항공력의 엄호 아래, 나흘치 식량과 개인 화기를 짊어질 수 있는 병사들이 남동쪽으로 돌파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하려면 싸울 능력이 남아 있는 6천 명 가운데 일부를 살리기 위해 부상자들을 현지에 남겨두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결국 이 계획은 반대에 부딪혔고, 참호 속 병력들은 운명에 맡겨졌다.
영웅적으로 싸우다, 그리고 짓밟히다
그들은 영웅적으로 싸웠고, 완전히 분쇄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싸웠다.
디엔비엔푸의 재앙은 여러 중대한 오류에서 비롯되었다. 부적절한 장소 선정, 상호 지원이 불가능하게 설계된 방어진지 배치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기지가 완전히 소멸한 직접적인 원인은, 지휘부가 병력을 증원하고 탄약과 식량을 보급하지 못한 데 있다. 물론 여기에 지아프 장군의 뛰어난 지휘 역량과 그의 대대 병사들의 굳건한 전투 의지를 빼놓을 수 없다.
디엔비엔푸의 상실은 하나의 전쟁, 그리고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 식민 지배의 종말을 상징했다. 식민지화된 민족이 유럽 종주국에게 패배를 안긴 것은 인류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