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비극의 무대, 까오방: 외인부대 샤르통 중령과 '죽음의 길' RC4

비극의 무대, 까오방: 외인부대 샤르통 중령과  죽음의 길  RC4

마른 체형에 키는 중간 정도, 팔에는 힘줄이 불거진 남자. 모자 챙과 입에서 떼지 않는 파이프 사이로 드러나는 강한 매부리코는 강인한 인물임을 말해 주고, 맹금류처럼 날카롭고 예리한 시선은 그가 전사임을 보여 준다. 그의 이름은 앙투안-마리-피에르 샤르통(Antoine-Marie-Pierre Charton). 보병 중령이자 외인부대 출신 군인이다. 폴리니(Poligny) 출신의 주라(Jura) 지방 사람으로, 생시르 특수군사학교 1923~1925년 '기사 바야르(Chevalier Bayard)' 기수 출신인 그는 운명과 마주한 1950년 10월, 나이 마흔일곱이었다. 1950년 7월 17일부터 그는 까오방(Cao Bằng) 독립 소구역(sub-secteur autonome)의 지휘관이었다.

두 강이 감싼 반도 위의 요새 도시

까오방은 통킨(Tonkin) 상부 지역의 작은 도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점령기에는 4천~5천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 무렵만 해도 이곳은 장미 덤불과 채소밭으로 뒤덮인, 화사하고 그림 같은 마을이었다. 넓고 깊어 홍수 때면 사나워지는 밤장강(Sông Bằng Giang)과 비교적 온순한 히엔강(Sông Hiến), 두 강이 만나는 지점의 반도 위에 도시가 안겨 있었다.

도시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는 성채가 반도를 꽁꽁 잠그고 있었다. 이 성채는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마지노 선을 본떠 현대화되었다. 지하 7미터 깊이로 수백 미터 길이의 지하 통로가 뚫려 있었고, 그 안에는 우물과 휴게실, 의무실, 탄약고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중국 국경의 열쇠, '죽음의 길' RC4

까오방은 중요한 도로 요충지이자, 무엇보다 중국 국경에서 핵심적인 전략 거점이었다. 이 도시가 쥐고 있는 것이 바로 국경을 따라 이어지는 식민지 도로 4호선(RC4), 곧 훗날 전 세계에 '죽음의 길'로 알려질 길이었다. 이 도로는 남쪽으로 동케(Dông Khé), 떳케(Thất Khé), 랑선(Lạng Sơn), 몽까이(Móng Cái)로 향하고, 북서쪽과 서쪽으로는 라오까이(Lào Cai), 나아가 당시까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분지, 디엔비엔푸(Diện Biên Phủ)까지 이어졌다.

지난 10년 동안 까오방은 더 이상 제2군관구의 수도 노릇을 하던, 남부 지방 군청 소재지 같은 분위기의 화사한 도시가 아니었다.

일본군은 1942년 이 도시를 점령했고, 중국군은 1945년에 들이쳤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프랑스는 옛 식민지를 되찾았다. 프랑스군에게 자리를 내주며 철수하던 중국군은 성채를 폭파해 버렸다. 그러나 지하 시설은 온전하게 남아 있었고 포대도 수리하기 어렵지 않았기에, 성채는 여전히 무시무시한 요새였다. 성채의 탐조등은 반도 밖, 밤장강 좌안에 펼쳐진 비행장을 효과적으로 지켜 주었다. 융커스와 다코타 수송기 덕분에 까오방은 하노이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였다.

그러나 육로로는 며칠이 걸리는 거리였다. RC4는 국경선을 따라 320km를 달린다. 몽까이에서 띠엔옌(Tiên Yên)까지는 해안을 따라 흐르다가, 이후 다이(Dây)와 비엣박(Việt Bắc)의 산악 지대로 파고들어 간다. 국경 지대로 갈 보급품은 띠엔옌으로 바다를 통해 상륙했고, 도로 호송 부대는 케투(Khế Tú)에서 집결한 뒤 까오방까지 240km, 사흘짜리 행군길에 올랐다. 중간 기착 숙소는 랑선과 떳케에 마련되어 있었다. 이 이름들을 기억해 두자.

추월도 불가능한 험준한 자갈길

랑선에서 까오방까지의 RC4를 넓고 잘 닦인 2~4차선 도로로 상상해서는 안 된다. 대부분 구간은 폭이 4미터에도 못 미치는 자갈길이었다. 고개와 협곡, 구불구불한 굽이, 스위치백, 오르막과 내리막, 터널이 이어지는 길 위로는 무성한 식생으로 뒤덮인 숲 우거진 능선이 군림하고 있었다. 차량은 서로 추월할 수 없었다. 게다가 비엣민(Việt Minh)이 교량 등 시설물에 대해 감행한 파괴 공작 때문에 우회로를 돌거나, 목숨을 걸고 얕은 물살을 건너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바로 이렇게 이국적이면서도 위협적인 정황 속에서, 비극이 막을 올리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