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제2차 세계대전의 '가짜 전쟁': 서부전선에 내려앉은 기묘한 침묵

가짜 전쟁(Phoney War)이란 무엇인가?

'가짜 전쟁'(영어: Phoney War, 독일어: Sitzkrieg, 즉 '앉아서 하는 전쟁')은 1939년 9월 3일 프랑스와 영국이 나치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시점부터, 1940년 5월 10일 독일이 프랑스·벨기에·룩셈부르크·네덜란드를 침공할 때까지 유럽 전선에서 이어진 기묘하게 조용한 기간을 말한다. 이 명칭은 언론인 롤랑 도르젤레스(Roland Dorgelès)가 사용하면서 널리 퍼졌는데, 참호와 마지노선 안에서 공세만 기다리며 지루함을 달래던 연합군에 대한 보도에서 따온 표현이었다. 당시 군 발표에는 두드러진 활동이 거의 없었고, 있어야 소규모 교전이 잠깐 보도될 정도였다.

배경: 폴란드 침공과 연합국의 선전포고

히틀러는 소련과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을 체결해 폴란드 분할에 소련이 동참할 것을 확인한 뒤, 1939년 9월 1일 선전포고 없이 군대를 폴란드로 진격시켰다(글라이비츠 사건 참조). 동맹 의무에 따라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특히 프랑스는 1918년 이후 상호 원조 조약을 통해 중부 유럽의 신생 국가들 대부분의 존재를 보장해 왔는데, 여기에는 독일을 둘러싼 위생선(cordon sanitaire)을 구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그러나 체임벌린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히틀러의 이전 희생국들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폴란드에 대한 의무도 이행하지 않았다. 조약상 프랑스는 총동원령 발령 15일 후, 즉 9월 중순까지 독일을 공격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프랑스군은 총구를 겨눈 채 멈춰 섰고 폴란드는 독일과 이어진 소련의 침공을 홀로 맞아야 했다.

독일군은 이 과정에서 '번개전(Blitzkrieg)' 전술을 처음으로 대규모로 운용했고, 부주라(Bzura) 강에서의 폴란드군 역공에도 불구하고 국방군은 신속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소련은 자신의 몫으로 폴란드 동부와 발트 3국을 차지했으며, 핀란드를 공격해(겨울 전쟁) 레닌그라드 인근 카렐리아 변경 지역을 빼앗으려 했다. 핀란드는 3개월간 저항했지만 결국 굴복했다.

마지노선 뒤의 침묵

첫 번째 성공적인 전역을 마친 히틀러는 시선을 서쪽으로 돌렸지만, 수개월간 그 전선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지노선 뒤에 참호를 파고든 프랑스군은 독일의 공격이 오기를 기다리며 막아낼 준비만 하고 있었다. 정찰 순찰대 간의 소규모 충돌 외에 대규모 전투가 없는 이 기묘한 상태가 바로 '가짜 전쟁'이라 불린 것이다.

복잡해진 프랑스군 지휘 구조

프랑스에서는 1939년 말 두망(GHQ Doumenc)이 신설되면서 지휘 구조가 더욱 복잡해졌다. 감랭(Gamelin)과 조르주(Georges) 사이에 중간 단계가 생긴 것이다. 결정적 작전 구역에서 무려 네 겹의 지휘 계층이 존재하게 된 셈이다. 감랭(국방 총괄), 두망(중간 사령부), 조르주(북동 전역 사령관), 비요트(제1집단군 사령관, 실질적 핵심). 여기에 별도의 '공군' 지휘 계통까지 더해진다.

앞의 세 지휘관이 주요 참모 부서를 나눠 가지다 보니 효율은 떨어졌고, 전투 수행에 필요한 모든 수단을 한 사람의 손에 쥔 지휘관은 없었다. 여기에 레노(Reynaud)의 그늘에 있던 인물 하나, 달라디에(Daladier)의 그늘에 있던 또 다른 인물의 개인적 대립까지 겹치면서 혼란은 가중되었다.

노르웨이 작전과 북유럽의 패색

교착 상태는 봄까지 이어졌다. 연합군은 스웨덴산 철광석이 독일로 흘러들어가는 통로를 끊기 위해 노르웨이를 거점 삼는 작전을 준비했지만, 이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오히려 독일이 1940년 4월 9일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침공하면서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겼다.

가짜 전쟁의 종언: 팔 게르브와 됭케르크

가짜 전쟁은 독일군이 대규모 공세인 '팔 게르브(Fall Gelb)'를 개시하면서 완전히 막을 내렸다. 독일은 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의 중립을 침해하고, 아르덴 숲을 돌파하는(스당 돌파) 기동으로 마지노선을 우회해 무너뜨렸다. 그 결과 스칸디나비아에 파견됐던 영·프 원정군은 급히 재상륙해야 했고, 연합군 주력은 됭케르크 포위망에 갇혔다.

영국 해군과 민간 요트들이 다이내모 작전(Operation Dynamo)을 통해 병사들과 프랑스군 상당수를 철수시켰지만, 중장비는 전부 버려야 했다. 프랑스군 일부는 후위를 맡아 포위망 축소를 늦추다가 포로가 되었다.

후방의 분위기와 선전 전

후방에서는 1차 대전('그 전쟁 중의 그 전쟁', der des ders)의 애국가요들이 《라 마들롱(La Madelon)》처럼 씁쓸하고 향수 어린 버전으로 불렸다. 독일 측은 서부 장벽(Westwall), 즉 지크프리트 선을 갖추고 있었다. 이 시기의 전투는 주로 공중전이었으며, 양측 합계 약 1,500명의 사망자를 냈다.

선전전은 독일에서는 괴벨스가, 프랑스에서는 지로두oux(Jean Giraudoux)가 담당했다. 양 진영 모두 경제 전체를 군대에 동원하는 총력전 체제로 들어갔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공산당의 지침, 즉 "생산에 한 시간을 덜 쏟으면 혁명에 한 시간을 더 쏟는 것"이라는 구호에 따라 수많은 파업과 태업, 사보타주가 벌어졌다.

미국은 연합국에 대해 현금 거래 조건으로만 군수품을 판매했고, 소련은 자원을 독일과 거래했다. 스웨덴 철광석 확보 문제는 노르웨이에서의 충돌과 나치의 침공으로 이어졌으며, 연합군은 해상 봉쇄를, 독일은 잠수함 공격으로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