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메트리오스 크리소스토모스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이오니아해에 위치한 그리스 섬 잔테(자킨토스)의 정교회 주교로, 나치가 내린 '섬의 유대인 공동체를 SS에 인도하라'는 명령에 불복종하며 항거한 인물이다. 지역 시장 루카스 카레르와 함께 그는 역사에 영웅으로 기록되었다.
이오니아해의 낙원, 잔테 섬
잔테(그리스어 원어로는 자킨토스)는 아르카디아의 왕이자 트로이의 건국자 다르다노스의 아들인 자킨토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도 언급될 만큼 오래된 이 섬은 길이 약 40km, 폭 20km, 면적 409㎢의 작은 땅으로, 그리스 국가의 작사가 디오니시오스 솔로모스의 고향이며 난파선이 누운 절경의 나바요 베이로도 유명하다.
젤럴드 더렐이 코르푸에서의 어린 시절을 담은 책들에서 묘사하듯, 이오니아 제도는 오후의 무더위와 끝없는 매미 소리로 평화롭기 짝이 없는 곳이다. 그러나 전쟁이란 바로 그런 평화로운 구석까지도 침범하는 것이었다. 태평양의 낙원조차 전쟁의 참화를 입었다면, 더 가까운 이곳이 예외일 리 없었다.

1941년, 추축국의 그리스 침공
1941년 4월 6일, 독일 국방군은 이탈리아와 불가리아 군대와 함께 그리스를 침공해 영토를 세 부분으로 분할했다. 이탈리아는 3분의 2(1912년부터 점령 중이던 도데카네스 제도 포함)를 차지했고, 불가리아는 북서부 대부분을 병합했으며, 독일은 아테네, 테살로니키, 마케도니아 중부, 크레타, 에게해 섬들과 터키 국경 지역을 확보했다.
1943년 가을 이탈리아가 연합군에 항복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독일은 이탈리아가 비운 지역을 장악해야 했고, 그 결과 같은 해 5월 불가리아 점령지에서 시작된 유대인 강제 이송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당시 그리스에는 두 갈래의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다. 하나는 고대부터 흩어져 정착한 로마니오테스였고, 다른 하나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추방된 조상을 둔 약 5만 명의 세파르딤으로, 대부분 테살로니키에 집중되어 있었다.
세파르딤 대부분은 독일이 직접 통치하던 테살로니키에서 체포되어 아우슈비츠와 트레블링카로 끌려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반면 구 이탈리아 점령지의 로마니오테스는 초기에는 상대적으로 운이 좋았다. 나치 당국과 격렬히 충돌했던 아테네 대주교 다마스키노스가 성직자들에게 유대인 공동체를 보호하라고 명령하고, 심지어 가짜 세례 증명서까지 인쇄하게 했기 때문이다. 다른 주교들도 다마스키노스(전후 총리가 된다)의 뒤를 따랐고, 덕분에 적지 않은 수의 유대인이 목숨을 건졌다.

275명 전원이 살아남은 기적
잔테 섬의 사례는 특별했다. 섬의 유대인 275명 전원이 살아남았고, 그것도 한 주교의 결단 덕분이었다. 바로 앞서 언급한 크리소스토모스였다. 당시 54세였던 그는 1944년 여름이 저물 무렵, 독일 선박 3척이 항구에 닻을 내리는 광경을 보며 불길함을 느꼈다. 배에는 코르푸 출신 유대인 2,000명과 케팔로니아 출신 400명이 실려 있었다. 여기에 잔테의 유대인들이 추가되어 파트라스로 이송된 뒤, 절멸 수용소행 열차에 오르게 될 예정이었다.
"명단이라면 이것뿐입니다"
1년 전인 1943년 9월 9일, 이탈리아군이 철수하고 독일군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독일군 사령관 알프레드 뤼트는 시장 루카스 카레르에게 유대인 공동체 전원의 신원과 주소가 적힌 명단을 작성하라고 요구했다. 병력이 상륙하는 즉시 체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카레르는 곧장 주교를 찾아갔다. 뮌헨에서 유학하며 독일어에 능통했던 크리소스토모스는 스스로 중재자를 자처해 명령 보류를 요청했다.

나치 관리가 종교인의 환담을 무시하고 명단을 재차 요구하자, 주교는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단 두 개의 이름만 적혀 있었다. 크리소스토모스와 카레르. 두 사람은 협조를 거부하며, 체포가 진행된다면 자신들도 함께 잡아가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대담한 무례함에 사령관은 동요했고, 상부에 지시를 요청하느라 귀중한 시간을 벌었다.
숨겨진 사람들, 침묵한 섬
주교와 시장은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다. 유대인 지도자 모세 가니스에게 절박한 상황을 알린 뒤, 그와 함께 특별한 구출 작전을 준비했다. 유대인들은 최소한의 짐만 챙겨 최대한 빨리 집을 떠나, 잔테 내륙의 마을과 농가에 사는 기독교 이웃들의 집으로 피신해야 했다. 마치 가족처럼 흩어져 숨는 방식이었다.
믿기 어렵지만 이 작전은 성공했다. 독일군이 몇 달간 섬에 머물렀음에도 아무도 그들을 밀고하지 않았다. 전환이 독일 점령군에게 위협이 되기 시작하자, 소련군의 진격을 막을 수 없게 된 점령군은 다시 배에 올라 떠났다. 며칠 뒤인 1944년 9월 12일, 섬은 해방되었다.
다만 오늘날 생존자들은 남아 있지 않다. 1953년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그들이 살던 동네가 파괴되자, 대부분 아테네와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민족 간의 의인'으로 기억되다
1978년, 크리소스토모스와 카레르(아테네의 다마스키노스와 함께)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이스라엘 기관 야드 바셈(Yad Vashem)이 유대인을 구한 비유대인에게 수여하는 '민족 간의 의인(Righteous Among the Nations)' 칭호를 받았다.
참고 자료
The Holocaust in Greece / Short history of the jewish communities in Greece / Yad Vashem / The Second World War(Henri Michel) / The agony of greek jews, 1940-1945(Steven B. Bowman) / A hidden child in Greece. Rescue in the Holocau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