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뱀버그 성: 북해 연안을 지켜온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성채

뱀버그 성: 북해 연안을 지켜온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성채

바다를 내려다보는 자연 그대로의 요새

뱀버그 성(Bamburgh Castle)은 잉글랜드 노섬벌랜드주의 북해 연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에든버러를 '에딘브러'라고 발음하듯, 현지인들은 이 성을 '밤브러(Bam-brah)'라고 부릅니다.

성은 해안선과 평행하게 뻗어 있는 길이 약 180미터의 암석 능선 위에 세워져 있으며, 능선은 주변 사구 지대보다 약 30미터 높이 솟아 있습니다. 이 능선은 극히 단단한 화성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육지 쪽 면은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을 이루고, 바다 쪽 사면 역시 가파르지만 다소 완만합니다. 덕분에 이곳은 자연적으로 완벽하게 요새화된 부지로, 성을 짓기에 더없이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성 위에서 내려다보는 전망 또한 탁월합니다. 남동쪽으로는 작은 어항 마을 시하우저스(Seahouses)까지, 북서쪽으로는 '홀리 아일랜드(Holy Island)'라 불리는 린디스판(Lindisfarne) 섬까지 해안선을 따라 멀리 바라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뱀버그 성은 길이 약 12킬로미터에 달하는 해안 구간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바다 위의 진정한 초병 역할을 했습니다. 성 맞은편 해상 약 3킬로미터 지점에는 판 제도(Farne Islands)라는 작은 암석 군도가 펼쳐져 있으며, 오늘날 이곳은 바닷새와 회색물범을 보호하는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고대 브리튼족 요새에서 앵글로색슨 왕국의 중심으로

5세기경, 오늘날 성이 서 있는 자리에는 '딘 구아리(Din Guarie)'라 불리는 브리튼족 요새가 있었으며, 이곳은 브리나이흐(Brynaich) 왕국의 수도였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전설과 역사가 뒤섞인 인물인 앵글족의 왕 이다(Ida)는 547년에 이 요새를 점령하고 앵글로색슨 왕국 베르니시아(Bernicia)의 초대 국왕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브리튼인의 역사(Historia Brittonum)』에 따르면, 이다의 손자 에셀프리스(Æthelfrith)는 성을 아내 베바(Bebba)에게 하사했는데, 오늘날 '뱀버그'라는 지명은 바로 그녀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바이킹의 파괴와 노르만 재건축

원래의 방어 시설은 993년 바이킹의 공격으로 파괴되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보는 성은 초기 노르만 시대의 재건축을 기반으로 하며, 그 심장부는 단연 돋보이는 대형 정사각형 로마네스크 양식의 첨탑(킵)입니다. 이 킵은 네 개의 모서리 탑과 면마다 돌출된 버트레스로 보강되어 있어, 성 안의 모든 건물을 군림하듯 내려다봅니다.

1095년에는 노섬브리아 백작 로버트 드 몽브레이(Robert de Montbray)가 일으킨 반란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잉글랜드 왕 윌리엄 2세의 포위 공격을 받았으나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로버트가 포로로 잡힌 뒤에도 그의 아내는 끝까지 성을 사수했지만, 왕이 남편의 눈을 뽑겠다고 위협하자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왕실의 요새, 그리고 포병에 무너진 첫 번째 성

이후 뱀버그 성은 잉글랜드 군주들의 소유가 되었으며, 버트레스가 돋보이는 대형 정사각형 킵은 아마도 헨리 2세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잉글랜드 북부의 중요한 전초 기지였던 만큼, 이 성은 스코틀랜드의 산발적인 습격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1464년, 장미전쟁 중이던 뱀버그 성은 리처드 네빌(제16대 워릭 백작)이 이끄는 군대의 9개월에 걸친 포위전 끝에 마침내 함락되었습니다. 이는 화약과 포병의 힘으로 정복된 잉글랜드 최초의 성이라는 의미에서, 중세 성채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포스터 가문의 400년, 그리고 암스트롱 가문의 부활

노섬벌랜드의 포스터(Forster) 가문은 약 400년에 걸쳐 왕실에 12명의 성 총독을 연이어 배출했으며, 이후 왕실은 존 포스터 경(Sir John Forster)에게 성의 완전한 소유권을 넘겼습니다. 그러나 1700년 윌리엄 포스터 경(Sir William Forster)이 사망한 뒤 사후 파산이 선언되면서, 빚을 갚기 위해 의회법에 따라 성을 포함한 재산이 그의 누이 도러시의 남편인 더럼 주교 너새니얼 크루(Nathaniel Crew)에게 매각되었습니다.

그 후 여러 소유주의 손을 거치면서 성은 점차 훼손되었고,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마침내 19세기 말, 산업가 윌리엄 조지 암스트롱(William George Armstrong)이 성을 매입하여 막대한 비용을 들여 대규모 복원과 재건축을 단행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성은 암스트롱 가문의 소유로 남아 일반에 공개되고 있으며, 다양한 행사의 개최지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영화 속 배경이 된 성

웅장한 외관 덕분에 뱀버그 성은 수많은 영화의 촬영지로 사랑받아 왔습니다. 『이반호(Ivanhoe)』, 『엘 시드(El Cid)』, 『메리 스투어트, 스코틀랜드의 여왕』, 『엘리자베스』, 『로빈 후드』 등 유명 작품들이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되었습니다.

성에서 이루어지는 고고학 연구

1996년부터 '뱀버그 리서치 프로젝트(Bamburgh Research Project)'가 성과 그 주변 지역에 대한 고고학·역사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초기 발굴 조사는 1960년대 고고학자 브라이언 호프테일러(Brian Hope-Taylor)의 지도 아래 이루어졌는데, 당시 발굴 과정에서 7세기의 놀라운 유물들이 잇달아 출토되었습니다. 1960년에는 '뱀버그 검(Bamburgh Sword)'이라 불리는 검이, 1971년에는 금으로 만든 장식판 '뱀버그 비스트(Bamburgh Beast)'가 발견되었습니다.

현재 이 프로젝트는 매년 여름 10주 동안 학생들을 받아들여 발굴 기술을 가르치는 한편, 성에 대한 이해를 한층 깊게 하는 교육 현장으로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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