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예프를 지키던 소련군, 고립 위기에 놓이다
남서 방면에서 작전 중이던 소련군, 특히 키예프 지역의 부대들은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었다. 소련군은 오랫동안 키예프 접근로에서 독일 남방집단군의 주력을 저지해 왔다. 도시 주민들마저 병사들과 함께 방어전에 나섰기 때문에, 독일군은 정면 공격만으로는 키예프를 함락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독일군은 우만과 페르보마이스크 일대의 측면에서 돌파구를 만드는 데 성공했고, 이로 인해 소련군 지휘부는 8월 초 부대를 드니프로 강 좌안으로 철수시켜야만 했다.
거대한 호 모양의 전선과 독일군의 협공
전선은 극도로 불리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정점에 키예프가 있고 양쪽 끝이 동쪽으로 멀리 뻗어 나간, 거대한 활 모양의 전선이었다. 독일군 지휘부는 이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9월 12일 두 방향에서 밀고 들어오는 협공 작전을 개시했다. 북쪽에서는 스타로두브 지역에서 출발한 제2기갑집단이, 남쪽에서는 크레멘추크 지역에서 출발한 제1기갑집단이 진격했다.
키예프와 드니프로 방어선을 사수하던 남서부 전선의 소련군은 포위 섬멸의 위기에 처했지만, 최고 사령부는 후퇴와 도시 포기를 끝내 허용하지 않았다.
9월 15일, 로흐비차에서 포위망이 완성되다
9월 15일, 포위의 집게발은 마침내 키예프 동쪽 200km 지점인 로흐비차 일대에서 닫혔다. 소련군 3개 군(제5군, 제37군, 제26군) 전체와 다른 2개 군(제21군, 제38군)의 상당 병력이 거대한 포위망 안에 갇히고 말았다.
키예프는 결국 버려질 수밖에 없었지만, 격렬한 저항은 9월 27일까지 계속되었다. 포위망을 빠져나온 잔존 부대와 예비대를 기반으로, 비엘로폴리에–레베딘–크라스노그라드–노보모스코프스크를 잇는 새로운 방어선이 구축되었다.
붉은 군대 역사상 최악의 패배 중 하나
키예프 동쪽에서 벌어진 남서부 전선 부대의 포위는 붉은 군대에 감당하기 힘든 중대한 패배였다. 9월 초 남서부 전선에 배치된 67만 7천 명의 병사와 장교 가운데, 포위망에서 탈출에 성한 것은 불과 15만 명 남짓이었다.
9월 15일 이후 대규모 부대 단위로 포위망을 돌파한 병사들도 있었고, 수만 명이 게릴라 부대에 합류했으며, 많은 이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중에는 전선 사령관 미하일 키르포노스 대장과 그의 참모부에 속한 수많은 장성과 장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20만 명이 넘는 소련군이 포로로 잡혔으며, 이들은 당시 대다수 소련 포로가 겪었던 잔혹한 운명—수용소에서의 고문과 죽음—을 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