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유럽 종교
인도 문명과 문화의 맥락에서 보면, 유럽의 문명과 문화 역시 수천 년의 깊은 역사를 지닌다. 리그베다의 편찬 시기에 대해서는 서구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어 왔지만, 현대 인도 학자들이 발굴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면 리그베다는 약 기원전 4000년에서 기원전 3000년 사이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유럽에서 종교와 철학의 사상적 전통은 대체로 기원전 6세기경 또는 그보다 앞선 어느 시점부터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종교는 베다 후기 성현들의 시대에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로마와 그리스를 포함한 유럽 거의 전역에서 믿어진 종교가 바로 인도유럽 종교였으며, 이는 이교적이고 다신교적인 성격을 띠었다. 인도 종교에는 태초부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신 개념이 존재했지만, 그리스와 로마의 인도유럽 종교에는 그러한 개념이 없었다. 그들은 대신 각각의 남신과 여신을 자연의 여러 힘을 관장하는 주인으로 여겼다.
그리스 신들의 기원
로마인들은 태초부터 다신교를 믿었으며, 주로 그리스 신들을 숭배했다. 그리스 신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존재는 제우스였다. 흥미롭게도 모든 신들의 왕으로 여겨진 존재는, 고대 인도 아리아인들이 리그베다에서 언급하며 숭배하던 '디야우스(Dyaus)'라는 신이었다. 신들의 왕 제우스의 아내는 헤라였으며, 제우스는 구름과 번개, 천둥을 관장하는 신으로서 인드라처럼 천둥을 손에 들고 다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러한 신들을 위해 수많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신전들이 세워졌다. 고대 로마 종교에서는 초기에는 제우스만을 숭배했지만, 점차 제우스를 대신하여 유피테르(Jupiter)가 주신으로 자리 잡았다. 유피테르는 인도 문헌에서 '디야우스피타르' 혹은 '브리하스파티'로 불리며 신들의 스승으로 간주된다. 이렇듯 고대 로마인의 종교는 인도아리아 종교에 뿌리를 두고 있었으며, 로마라는 도시 자체가 동방에서 이주해 온 아리아인 집단에 의해 건설되었다는 사실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초기 로마인들은 특정한 신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주로 그리스의 신들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새로운 신들을 계속 신단(神壇)에 추가해 나갔다. 전쟁의 신 마르스(Mars)도 그 목록에 포함되었는데, 로마인들은 마르스를 로마 건국의 전설적 쌍둥이 레무스와 로물루스의 아버지로 믿었다.
로마인들은 유피테르를 하늘에서 로마인들을 굽어보고 보호하는 가장 위대한 신으로 여겼다. 로마의 카피톨리노 언덕 위에는 유피테르의 신전이 세워졌고, 그곳에서는 유피테르의 아내이자 누이인 유노(Juno)와 그의 딸 미네르바(Minerva)가 함께 섬겨졌다. 또한 바다는 넵투누스(Neptune)가, 저승 세계는 플루토(Pluto)가 관장하는 것으로 믿었다.
이 밖에도 바쿠스, 아폴로, 메르쿠리우스, 플루토, 새턴, 불칸, 미트라스 등이 로마의 신들 목록에 포함되었다. 특히 아폴로(태양), 새턴(토성), 미트라스(미트라)는 고대 인도 아리아인들 역시 신으로 숭배했던 존재들이었다. 여신으로는 시리우스, 플로라, 포르투나, 디아나, 비너스 등이 꼽혔으며, 이 여신들은 그리스와 게르만 종교에서도 함께 숭배되었다. 그 밖에 상대적으로 격이 낮은 신들도 있었는데, 복수를 맡은 네메시스와 퓨리, 사랑의 신 큐피드, 평화의 신 팍스 등이 대표적이었다.
점차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신들이나 다른 나라의 신들을 숭배하는 것을 멈추고 오직 로마 고유의 신들, 즉 마르스, 유피테르, 유노, 미네르바, 큐피드, 퓨리 등만을 섬기게 되었다. 나아가 기독교 탄생 이전의 세기,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대에 이르러 로마인들은 재위 중의 황제들까지도 로마 신들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로마의 신들을 위한 신상과 신전이 곳곳에 세워졌고, 가축이 제물로 바쳐졌다. 이 종교의 영적·철학적 측면에 관한 기록은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인도인과 그리스인들처럼 로마인들 역시 금식과 단식을 실천했다. 그들은 신들의 기적과 은혜를 믿었고, 신들이 분노할 때 내리는 재앙 또한 두려워했으며, 신들을 달래기 위해 인신공양(人身供養)까지 드렸다. 로마 황제들 역시 이 종교를 따랐다.
유대교와의 거리
유대교는 약 기원전 2000년경 바빌론에서 나타났다. 다신교적인 그리스 종교와 정반대로, 유대교는 일신교였다. 화신이나 남신·여신에 대한 믿음은 없었으며, 대신 하나님이 보낸 예언자와 천사를 믿었다. 로마와 그리스는 유대교와 완전히 선을 그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수백만의 유대인이 광대한 로마 제국 전역으로 흩어져 정착하게 되었다.
유대인들의 중심지는 속주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둔 팔레스타인이었다. 유대인의 경전은 히브리어로 쓰인 타나크(Tanakh)로, 사실상 기독교 성경의 전반부에 해당하며 '구약성서'라고도 불린다. 이 경전에는 언젠가 메시아가 지상에 강림하여 유대인을 구원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로마 제국 안에 수많은 유대인이 살았고, 유대의 본토인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역시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인들은 끝까지 유대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 종교를 증오했으며, 기회만 되면 유대인을 박해하고 죽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로마 고대 종교에 대한 불만
예수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로마 사회에서는 고대 종교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공화정 말기인 기원전 1세기에 활동한 유명한 라틴 시인 루크레티우스(Lucretius)는 장편 서사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서 내세를 허황된 미신으로 규정하고 종교적 교조주의를 조롱했다. 그의 뒤를 이어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같은 시인들이 문단을 이끌며 전통 종교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문학 속에 녹여냈다. 이러한 지식인들의 비판은 훗날 로마에서 기독교가 뿌리내리는 토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