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발리 섬에서의 넷째 날 – 신과 악마의 세계, 그리고 자와 섬으로

발리 섬에서의 넷째 날 – 신과 악마의 세계, 그리고 자와 섬으로

새벽 다섯 시, 논가의 차 한 잔으로 시작하는 아침

4월 17일에도 역시 새벽 다섯 시경에 잠에서 깼다. 인도 시간으로 환산하면 두 시 반쯤 되는 시각이다. 오늘도 어제처럼 논밭이 내려다보이는 잔디밭에서 차를 마시며 하루를 열었다. 마침 오늘은 운전기사 푸투가 오지 않는 날이라 한결 마음이 느긋했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노트북을 펴 놓고 지난 사흘간의 여행 기록을 정리해 보았다.

열 시쯤 되자 마두가 "오늘은 좀 걷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나와 비제이, 마두 셋은 푸라 타만 아윤 사원(Pura Taman Ayun)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논길이 아니라 마을 한복판을 관통하는 길로 걸었다.

집마다 지켜주는 가네샤와 스바스티카

길을 걷다 보니 대부분의 집 정문 위에는 가네샤 상이 모셔져 있거나 스바스티카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인도에서 스바스티카는 가네샤의 상징으로 여겨지는데, 발리에서도 똑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도중에 몇 곳의 사원도 만날 수 있었는데, 사원 밖에는 인도의 전통처럼 문지기상(드바라팔라)이 세워져 있었다.

인도와는 다른 문지기상의 위상

유일한 차이점은 인도에서는 문지기상이 크게 부각되지 않아 잘 눈에 띄지 않는 반면, 발리에서는 사원 정문 양옆에 사람 형상의 문지기상이 아주 돋보이게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이 형상들은 강렬한 원색으로 칠해져 있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왔다.

마녀·악마·신이 공존하는 기묘한 세계

타만 아윤 사원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연히 위엄 있는 여성상 하나를 발견했다. 높이 약 2.4미터에 달하는 이 거상은 건물 벽 바깥쪽 감실에 안치되어 있었다.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건물로 향했고, 알고 보니 그곳은 발리풍의 신과 여신, 악마의 조각상을 전시하는 전시관이었다. 높이 2미터를 넘는 조형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솔직히 이 무렵 우리는 걷기에 상당히 지쳐 있어서 안까지 들어갈 기운이 남지 않았고, 돌아갈 시간도 다가왔다. 그래서 비제이에게 부탁해 전시관 내부를 영상으로 담아 오도록 했다. 입장료는 25,000루피아였다. 비제이가 촬영하러 들어가는 동안 마두와 나는 전시관 밖에서 기다렸다.

비제이가 찍어 온 영상 속에는 마녀와 악마, 신들이 어우러진 발리 특유의 기묘하면서도 매혹적인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의 일화를 재현한 조형물들과 더불어 시바-파르바티, 라마-시타 등의 아름다운 상들도 눈길을 끌었다. 모든 조형물은 순수한 발리 스타일로, 신체 표현 방식이 인도의 것과는 확연히 달랐고, 화사하고 강렬한 색채가 입혀져 있었다.

전시를 충분히 감상한 뒤 우리는 서비스 아파트로 돌아왔다. 남은 하루는 발리 여행 회고록을 쓰며 보냈다.

발리 섬에서 자와 섬으로

4월 18일, 드디어 발리 섬을 떠나는 날이었다. 비행기는 오후 두 시 출발이었지만, 푸투에게는 아홉 시에 와달라고 부탁해 두었다. 머무르던 멩위(Mengwi)에서 덴파사르 공항까지는 약 한 시간 반 거리였다.

우리는 덴파사르에서 자와 섬에 위치한 인도네시아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욕야카르타(Yogyakarta)로 향했다. 이 도시는 조자카르타, 줄여서 '조그자(Jogja)'라고도 불린다. 발리에서 욕야카르타까지의 직선 거리는 502킬로미터로, 비행 시간은 겨우 1시간 10분짜리 국내선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시차였다. 발리 시간이 욕야카르타보다 한 시간 빠르다. 그래서 오후 두 시에 발리를 떠나 1시간 10분을 날아 욕야카르타 공항에 내렸을 때, 시계가 가리키던 시각은 오후 두 시 십 분이었다. 실제 경과 시간으로는 세 시 십 분이지만, 시간대가 한 시간 거슬러 올라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