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셉티마니아(Septimania): 프랑스 남서부의 잊혀진 역사적 지역

셉티마니아(Septimania)는 오늘날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했던 고대·중세의 역사적 지역으로, 가론 강(Garonne)과 론 강(Rhône) 사이, 그리고 피레네 산맥과 세벤 산맥(Cévennes)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지중해 연안까지 닿는 이 땅은 고대부터 동서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지명의 유래: 제7군단과 일곱 도시

셉티마니아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유래 설이 전해진다. 하나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제7군단(Septimani) 참전 용사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이 지역이 일곱 개의 도시 혹은 교구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후자에 따르면 셉티마니아는 나르본(Narbonne), 님(Nîmes), 베지에(Béziers), 마글로뉴(Maguelonne), 로데브(Lodève), 아그드(Agde), 위제(Uzès)의 일곱 도시를 포함했으며, 훗날 엘른(Elne)과 카르카손(Carcassonne)이 여기에 더해졌다. 이 지역은 이후 랑그독(Languedoc) 지방의 상당 부분을 이루게 된다.

서고트 왕국의 마지막 갈리아 영토

프랑크 왕 클로비스 1세가 서고트족을 갈리아 대부분의 영토에서 몰아낸 뒤, 셉티마니아는 스페인을 근거지로 한 서고트 왕국이 갈리아에 남긴 마지막 영토가 되었다. 서고트족은 이 지역을 통해 지중해와의 연결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무어인의 침입과 프랑크 왕국의 정복

8세기 초, 이베리아 반도에서 북상한 무어인(아랍-베르베르 군대)이 셉티마니아 일대까지 진출했다. 732년 프랑크 왕국의 실권자 샤를 마르텔(Charles Martel)이 이들의 침입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면서, 이 지역은 프랑크 세력의 확장에 문을 열게 되었다. 프랑크인에 의한 점령은 768년, 즉 피핀 3세(피핀 단신) 통치 시기에 완료되었다.

카롤링거 왕조 시대와 셉티마니아의 소멸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 셉티마니아는 아키텐 왕국(Aquitaine)의 일부로 편입되었지만, 817년에는 별도의 공작령으로 분리되었다. 그러나 9세기에 이르러 이 지역은 툴루즈 백작(Counts of Toulouse)의 세력권에 넘어가면서 독립된 정치적 실체로서의 존재감을 잃고 역사에서 퇴장했다. 이후 이 땅은 랑그독 지방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