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내전이란?
시리아 내전은 2011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분쟁으로, 아랍의 봄 시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의 폭력적인 대응은 무장 반군 세력의 등장을 불러왔으며, 이 분쟁으로 지금까지 약 6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리아 내전의 원인
시리아 내전은 2011년 1월 시리아에 도달한 아랍의 봄 시위에서 파생된 분쟁입니다. 아랍의 봄은 2010년 말과 2011년 초 북아프리카와 중동 전역을 뒤흔든 대중 시위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시리아는 1970년대부터 알아사드 가문이 통치해 왔으며, 2000년부터는 바샤르 알아사드가 독재적으로 국가를 이끌고 있습니다.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에 대한 시위는 아랍 각국으로 번진 시위 물결에 힘입어 촉발되었고, 알아사드 가문의 통치 방식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표면화시켰습니다.
첫 시위는 시리아 남부의 도시 다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11년 3월, 학생들이 "바샤르가 다음으로 무너질 통치자"라는 내용의 낙서를 남긴 뒤 체포되면서 상징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정부의 대응은 시리아 비밀경찰을 동원해 학생들을 체포하고, 심문 과정에서 고문을 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시리아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바샤르 알아사드 반대 시위에 나서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다마스쿠스와 알레포 같은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렸습니다.
시위대는 정부 개혁, 민주주의 발전, 다당제 도입, 일자리 창출, 생활 여건 개선 등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폭력적이었고, 경찰력을 동원해 시위를 강경 진압했습니다. 정부의 탄압은 오히려 국민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위를 조직하게 만들었고,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며 계속 억압받았습니다.
전쟁은 시위에 참여하던 민간인 집단이 정부군에서 탈영한 군인들과 합류해 무장 민병대를 결성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정부의 폭력에 맞서고 자신들의 도시에서 시리아군을 몰아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바샤르 알아사드의 대응은 더 강한 탄압이었고, 결국 폭력은 전국으로 번졌습니다.
시리아 내전의 확대
시리아 내전 초기에는 반정부 세력인 자유시리아군(FSA)이 시리아 정부군과 맞섰습니다. 자유시리아군은 아랍의 봄 시위 과정에서 동원된 민간인들을 통해 형성되었으며, 탈영병들과 합류해 2011년 7월 공식 출범했습니다.
자유시리아군은 처음에는 특정 종교 성향에 얽매이지 않는 세속적 성격의 집단으로, 반군 진영의 온건파를 대표했습니다. 그러나 분쟁이 진행되면서 이러한 입장은 급격히 변했고, 집단은 종교 근본주의 이념에 경도되었습니다.
또한 자유시리아군의 전투 목표도 완전히 변모했습니다. 내전 초기의 주요 목표는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를 전복하고 민주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과 싸우는 데 주력하게 되었습니다. 그 명분은 시리아 영토 분할을 막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유시리아군이 쿠르드족과 투쟁하는 배경에는 이 분쟁에서 튀르키예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다른 반군 세력들도 우후죽순처럼 등장했으며, 그중 상당수는 극단주의 성향이었습니다. 이러한 극단주의 반군 세력 중 가장 큰 규모는 수니파 기반의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입니다. 이 단체는 과거 파테흐 알샴 전선, 그리고 누스라 전선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2016년 7월까지는 알카에다의 시리아 무장 조직이었습니다.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의 알카에다와의 결별은 평화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은 2018년 2월에 결성된 근본주의 단체인 후라스 알딘과 충돌했는데, 후라스 알딘은 현재 시리아 내 알카에다의 대표 조직으로 간주됩니다.
2014년부터는 시리아의 혼란을 틈타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를 침공해 영토 일부를 장악했습니다. 이슬람국가는 이 지역에 칼리파국을 세웠습니다. 칼리파국은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강제하는 일종의 이슬람 종교 국가입니다.
이슬람국가는 시리아 전역에 대한 완전한 지배를 추구했기 때문에, 시리아에서 싸우던 모든 세력의 적이 되었습니다. 이 테러 조직은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와 시리아 내 다른 세력 모두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되었고, 이에 따라 이 조직의 확장을 막기 위한 대규모 국내외적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러시아와 미국 같은 국가들은 이슬람국가 퇴치를 위해 막대한 자원을 동원했고, 시리아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유시리아군 같은 반군 세력도 이슬람국가와 싸웠습니다. IS에 대한 대응은 성과를 거두어, 현재 이슬람국가는 시리아 내 영토를 더 이상 통제하지 않습니다. 다만 국제적인 테러 활동 때문에 여전히 위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슬람국가가 가져온 폭력에 맞서 시리아 쿠르드족은 자위를 위해 움직였고, 그 결과 시리아 쿠르디스탄 인민방위대대(YPG)가 탄생했습니다. YPG는 시리아 북부와 북동부의 쿠르드족 통치 지역인 시리아 쿠르디스탄에 속해 있으며, 이 지역은 '북시리아 민주연합'이라고도 불립니다.
쿠르드족은 분리주의를 추구한다는 비판을 받지만, 이를 부인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별도의 분리주의 행동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슬람국가로부터 쿠르드족을 보호해 온 YPG는 튀르키예 군대의 공격으로부터도 시리아 쿠르드족을 방어하고 있습니다. 튀르키예는 쿠르드족이 테러 조직의 일원이라고 비난합니다.
국제 관측통들은 튀르키예의 쿠르드족 공격을 튀르키예의 전략적 일환으로 봅니다. 튀르키예는 시리아 내 쿠르드족이 강화되면 자국 영토에 거주하는 쿠르드 소수민족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합니다. 튀르키예는 2019년 미국이 쿠르드족에 대한 지원을 철회한 후 공세를 한층 강화했습니다.
시리아 내전에서의 외세 개입
시리아 내전에서 외세의 개입은 직접적·간접적으로 이루어지며, 여러 국가가 서로 다른 세력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개입은 처음에 이슬람국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극단주의 조직의 거점을 폭격해 약화시켰습니다.
미국은 또한 반군 세력에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자유시리아군과 인민방위대대(YPG)가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미국은 자유시리아군에 대한 지원을 철회했습니다. 자유시리아군은 튀르키예와 손을 잡았고, YPG는 2019년 튀르키예의 공세가 강화되자 학살을 피하기 위해 시리아 정부와 러시아와 손을 잡았습니다.
러시아는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를 지원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시리아가 국제 제재를 받지 않도록 해왔습니다. 또한 러시아는 2015년부터 분쟁에 개입해 시리아 정부의 이슬람국가 및 반군 퇴치 작전을 강화했습니다. 러시아의 지원은 위기의 순간에 바샤르 알아사드가 권력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란 역시 시리아 정부를 지원합니다. 주된 이유는 수니파 민병대가 시리아에서 권력을 잡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시리아는 시아파 조직인 헤즈볼라(레바논 기반)에 위협이 될 것이고, 이란의 중동 내 이익도 심각하게 위협받게 됩니다. 이란은 바샤르 알아사드에게 병력, 무기, 자금을 보내고 있습니다.
시리아 내전의 영향은?
시리아 내전은 10년 넘게 지속되었고, 이 분쟁의 규모는 나라를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도로, 병원망, 학교 등 국가의 기본 인프라가 파괴되었습니다. 이는 시리아 경제와 국민의 삶의 질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습니다. 수백만 명이 의료 서비스 접근권을 잃었고, 수백만 명의 아이들이 학업을 중단해 미래가 위태로워졌습니다.
물질적 파괴 외에도 국민들의 궁핍화를 언급해야 합니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나라에서 국민들의 생활은 갈수록 악화되었습니다. 오늘날 국민의 절반 이상이 생존을 위해 인도적 지원에 의존하고 있으며, 식량과 같은 생존 필수품조차 부족한 실정입니다.
전쟁은 또한 수많은 사망자를 냈습니다. 2020년 말까지 약 6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1,300만 명이 생존을 위해 집을 떠났습니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시리아 내에서 이주했고, 500만 명 이상이 국외로 피신했습니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외세의 개입이 계속해서 분쟁에 부채질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관련된 어느 세력도 무기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어 보이며, 시리아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한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