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버네스셔란 어떤 곳인가?
인버네스셔(Inverness-shire)는 '인버네스'라고도 불리며, 영국 스코틀랜드 북부에 위치한 역사적인 카운티입니다. 인버네스셔는 스코틀랜드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역사적 카운티로, 중부 하이랜드(Highlands)의 일부와 글렌 모어(Glen Mor), 그리고 북쪽 하이랜드 지역의 일부를 아우릅니다.
또한 이 카운티는 내헤브리데스 제도와 외헤브리데스 제도의 여러 섬들을 관할하는데, 대표적으로 스카이(Skye), 해리스(Harris)(루이스 앤 해리스의 일부), 노스유이스트(North Uist), 벤베쿨라(Benbecula), 사우스유이스트(South Uist), 바라(Barra) 등과 그 주변의 작은 섬들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외헤브리데스 제도에 속하는 섬들(해리스, 유이스트 제도, 벤베쿨라, 바라)은 웨스턴아일즈(Western Isles) 자치구에 포함되며, 나머지 지역(내헤브리데스 제도와 본토 전역 포함)은 하이랜드(Highland) 자치구에 속합니다.

선사시대부터 픽트족의 땅까지
카운티 곳곳에 남아 있는 케언(cairn, 돌무더기 무덤), 스톤 서클(stone circle), 브로치(broch, 건식 석조 탑) 등은 이 지역에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로마 시대에 이 지역이 기록에 처음 등장했을 때, 인버네스셔는 픽트족(Picts)의 땅이었습니다. 서기 565년 성 콜룸바(St. Columba)가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을 당시 인버네스는 브루드 왕(King Brude) 치하의 픽트족 수도였습니다.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스코틀랜드가 통일되면서 인버네스셔는 모레이(Moray) 지방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중세에는 매킨토시(MacIntosh) 가문, 프레이저(Fraser) 가문, 치솀(Chisholm) 가문, 그랜트(Grant) 가문 등 여러 토착 지배 가문들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대서양 연안 지역에서는 맥도널드(MacDonald), 캐머런(Cameron), 매클라우드(MacLeod) 가문이 군도领主(Lords of the Isles)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15~16세기에 접어들면서 스튜어트(Stuart) 왕조의 국왕들은 성장하는 클랜(clan, 씨족) 체계 내 족장들의 영향력을 활용하여 인버네스셔에 대한 통제권을 확립해 나갔습니다.
내전과 재커바이트 항쟁의 격랑
17~18세기에는 잉글랜드 내전(English Civil Wars)과 재커바이트(Jacobite) 반란을 둘러싼 종교적·정치적 분쟁에 카운티의 클랜들이 각기 다른 진영으로 참여하면서, 인버네스셔는 끊임없는 내분에 시달렸습니다. 정부는 지역을 진정시키기 위해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에 걸쳐 조지 요새(Fort George), 어거스터스 요새(Fort Augustus), 윌리엄 요새(Fort William)를 건설하고 군사 도로망을 구축했습니다.
정부는 족장들의 권한을 축소하고, 외부인들이 이 지역의 광대한 토지를 매입할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들 새로운 지주들은 19세기 초 '하이랜드 클리어런스(Highland Clearances)'라 불리는 대규모 강제 퇴거 과정에서 수천 명의 크로프터(crofter, 소작농)를 쫓아내고 대규모 양목장을 조성했습니다. 이로 인해 주민들은 캐나다, 미국, 호주 등지로 대규모 이주의 물결을 이루며 떠나야 했습니다.
크로프터들에 대한 스코틀랜드 여론의 폭넓은 동정은 세기 후반 보호 입법으로 이어졌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여전했고 크로프터와 농촌 주민들은 20세기에 들어서도 도시 지역으로 계속 이주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관광 산업의 발전과 북해(North Sea) 유전 개발은 인버네스셔 일부 지역에 새로운 경제적 활력을 불러일으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