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리보니아(Livonia) | 발트해 동안의 역사 지역

리보니아의 기원과 명칭

리보니아(Livonia), 독일어로 리프란트(Livland)는 발트해 동쪽 해안, 리투아니아 북부에 위치한 역사적 지역이다. '리보니아'라는 이름은 12세기 독일인들이 핀우고르계 민족인 리브족(Livs)의 영토에 처음 붙인 것으로, 리브족의 정착지는 서드비나 강(다우가바 강)과 가우야 강 하구 일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이후 이 명칭은 점차 그 범위가 넓어져 오늘날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의 거의 전역을 아우르는 지명으로 사용되었다.

검의 형제단과 리보니아 연합

13세기에 여러 발트족 및 핀족 부족이 거주하던 대(大)리보니아는 검의 형제단(1202년 창설, 1237년 이후 튜턴 기사단 산하의 리보니아 기사단)에 의해 정복되고 기독교화되었다. 정복된 영토는 주교령 등 교회 국가, 자유 도시, 그리고 기사단이 직접 통치하는 지역으로 구성된 리보니아 연합체로 재편되었다.

1419년 여러 정치 세력이 공동 입법 회의로 통합된 이후 기사단과 그 봉신들이 지배 신분으로 부상했다. 이들은 특히 발트 해상 무역을 위한 곡물 공급을 통해 큰 번영을 누렸으나, 정치적으로는 분열된 상태였다. 상호 불신과 이해관계의 충돌로 인해 주교들과 자유 도시 등 다른 세력과의 경쟁 구도를 극복하지 못했다. 16세기 중반에 이르러 리보니아에서는 프로테스탄트의 확산으로 촉발된 종교적 분열과 농민들의 불만이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

리보니아 전쟁과 영토 분할

러시아가 이 지역을 침공하면서(리보니아 전쟁, 1558~1583) 리보니아의 지배 세력은 더 이상 자신들의 지배권을 방어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기사단을 해산하고 리보니아를 분할했다(빌뉴스 연합, 1561). 서드비나 강 이북의 기사단 영토는 리투아니아에 귀속되었으며(리보니아 본토), 서드비나 강 이남의 쿠를란트 지역은 폴란드의 봉익(封邑)이 되었다. 또한 이 지역에 이미 이해관계를 갖고 있던 스웨덴은 에스토니아 북부를 정복했다.

이러한 영토 분할 체제는 1621년까지 유지되었다. 그해 스웨덴은 리가와 옐가바(쿠를란트의 수도 미타우)를 점령했고, 이어 폴란드-리투아니아로부터 에스토니아 전역과 라트비아 북부(비제메, 즉 리보니아 본토 지역)를 빼앗았다(알트마르크 휴전, 1629).

스웨덴 지배와 러시아 제국 편입

스웨덴은 이 영토들을 약 한 세기 동안 보유하며 폴란드(폴란드-스웨덴 전쟁, 1654~1660)와 러시아(러시아-스웨덴 전쟁, 1654~1661) 양측의 공격으로부터 이를 지켜냈다. 그러나 대북방전쟁 이후 스웨덴은 이 지역들을 상실하여 1721년 러시아에 할양했다(뉘스타트 조약). 아울러 폴란드 분할의 결과로, 1629년 이후 폴란드가 계속 보유하고 있던 리보니아 남동부인 라트갈레(1772년)와 쿠를란트(1795년) 역시 러시아 제국에 병합되었다.

이후 역사적 리보니아는 러시아 제국 내 세 개의 현(州)으로 나뉘어 통치되었다. 에스토니아 현(민족적 에스토니아의 북부), 리보니아 현(민족적 에스토니아의 남부와 라트비아 북부), 그리고 쿠를란트 현이 그것이다.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 이후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는 독립을 선언했으며, 두 나라는 1940년 소련에 편입되었다가 1941년부터 1944년까지 독일군의 점령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