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알히라(Al-Hira): 라크미드 왕조의 수도였던 이라크 고대 도시

알히라(Al-Ḥīrah)는 시리아어 ‘히르타(ḥirtā)’, 즉 “창고”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영어로는 히라(Hira)라고 불린다. 이라크 중남부의 쿠파(al-Kūfah) 남쪽에 자리한 이 고대 도시는 이슬람 이전 아랍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곳이다.

군사 거점에서 왕국의 수도로

알히라는 원래 군사 캠프로 시작되었으나, 서기 5~6세기에 이르러 사산조 페르시아(이란)에 복속한 아랍계 봉신 왕조인 라크미드 왕조(Lakhmids)의 수도로 발전했다. 당시 이 도시는 페르시아, 비잔틴 제국, 아라비아 반도 사이의 외교·정치·군사 활동이 집중되는 요충지였다.

알히라는 아랍 유목민들의 공격으로부터 사산조 페르시아를 방어하는 방패 역할을 수행했으며, 동시에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반도를 연결하는 대상(隊商) 경로의 핵심 거점으로서 번영을 누렸다.

이슬람 이전 아랍 문화의 요람

알히라의 진정한 가치는 문화사에서 찾을 수 있다. 6세기 전성기에 라크미드 왕조는 웅장한 궁전과 성채들로 도시를 가꾸었다. 전통에 따르면 아랍 문자가 이곳에서 발달했다고 전해지며, 특히 아랍 시가(詩歌)와 기독교의 발전에 있어 알히라가 차지한 역할은 지대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슬람 이전 아라비아에서 가장 유명했던 시인들은 물론, 타라파(Ṭarafah)와 나비가 앗두바이아니(an-Nābighah adh-Dhubyānī) 같은 대문호들도 라크미드 궁정에 의탁하며 작품 활동을 펼쳤다. 또한 네스토리우스파(Nestorian) 기독교 교구의 소재지로서 동방 종교 생활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기독교 일신주의가 아라비아 반도로 확산되는 데 결정적인 다리 역할을 했다.

쇠퇴와 몰락

그러나 7세기 초, 페르시아인들이 라크미드 왕조를 의도적으로 붕괴시키면서 알히라는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633년, 이 도시는 무슬림 군대에 항복하며 고대 도시로서의 화려한 명맥을 마무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