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10시간의 전쟁'…상식을 초월한 이스라엘 기습 작전, 소련군 사망

 10시간의 전쟁 …상식을 초월한 이스라엘 기습 작전, 소련군 사망

'드리즐 작전'은 적진 한복판에서 벌어진 특수작전의 완벽한 사례다. 이스라엘군은 침투해 목표물을 타격한 뒤 철수했고, 그 과정에서 목표물은 물론 적의 사기마저 꺾어놓았다.

6일 전쟁 이후, 이어진 '소모전'

1967년 이스라엘은 아랍 인접국들을 상대로 기습 공격을 감행해 엄청난 타격을 안겼다(6일 전쟁). 그러나 나세르가 이끄는 이집트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후 약 3년에 걸쳐 선전포고 없는 전쟁, 이른바 '소모전(War of Attrition)'이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서 계속되었다.

교전은 주로 공중에서 빈번하게 벌어졌으며, 소련 역시 이집트 편에 서서 직접 개입했다. 이에 이스라엘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수에즈 운하 서쪽 이집트 영토 깊숙한 곳을 강타하는 대담한 작전을 추진하기로 결심한다.

노획한 이집트 장비로 위장한 기습 부대

이 작전은 이스라엘 기갑사령부와 해군이 공동으로 설계했으며, 지휘는 바루흐 하렐 중령에게 맡겨졌다. 작전의 핵심은 노획한 이집트군의 전차·장갑차·군복을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전리품으로 확보한 T-55 전차 6대와 BTR-50 장갑차 3대가 동원되었다. 각 전차는 장교가 지휘했고, 승무원은 이스라엘군 기갑학교 출신 베테랑들로 구성되었다.

전차에 탑승한 보병은 제7기갑여단 정찰중대 소속이었으며, 여기에 아랍어에 능통한 명성 높은 사예레트 마트칼(Sayeret Matkal, 제269부대) 요원들이 합류했다.

운하 도하는 해군 상륙정 전력이 담당했고, 이집트 해안 상륙에 앞서 이스라엘 해군 특수부대 샤예텟 13(Shayetet 13) 요원들의 정찰이 선행될 예정이었다.

참가자들은 6주간의 집중적이고 혹독한 훈련을 마친 뒤, 1969년 9월 초 극비 속에 시나이 반도 라스 수다르에 집결했다.

대담한 기습의 시작

9월 7일, 샤예텟 13 특공대원 8명이 라스 사다트 인근 이집트 해안에 잠입해 이스라엘 상륙 지점을 위협할 수 있는 이집트 어뢰정 2척을 폭파했다. 이 공격은 동시에 이집트군의 시선을 그곳으로 끌어당기는 양동 작전이기도 했다. 본대는 그보다 남쪽에서 상륙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하렐이 이끄는 소규모 부대(약 100명)는 새벽 3시 37분, 라스 사다트에서 40km 남쪽에 있는 엘 하페이르에 저항 없이 상륙하는 데 성공했다. 전차와 장갑차에는 추가 연료와 탄약이 가득 실려 있었다. 이집트군으로 위장한 이스라엘군은 남진하며 그 행로에 공포를 퍼뜨렸다.

부대는 먼저 아부 다라그의 이집트 공군기지와 레이더 기지를 기습해 두 곳 모두 무력화했다. 날이 밝자 A-4 스카이호크 공격기의 근접 항공 지원이 이어졌지만,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기 1대가 격추되었다.

하렐 부대는 라스 자프라나의 또 다른 레이더 기지까지 파괴했다. 이들은 적에게 발각되어 이집트 중장갑 부대가 출동하기 전까지 해안 진지 19곳과 전초기지 12곳을 추가로 파괴했다.

10시간 만에 끝난 '전쟁'

이제 물러날 때라고 판단한 이스라엘군은 적이 접근할 수 있는 도로를 폭파한 뒤, 적진에서 9시간 넘게 작전을 수행하고 라스 자프라나에서 회송해 줄 것을 신호로 알렸다.

이스라엘 부대는 시나이 반도를 아무 탈 없이 통과했다. 이번 작전으로 약 200명의 적을 무력화하고 레이더 기지 2곳을 파괴했을 뿐 아니라, 이집트군의 소련군 고문 코르네예프 대령을 사살하는 성과까지 거두었다. 이스라엘 측 발표에 따르면 또 다른 소련 고문(카라세프)과 이집트 고위 장교 1명도 함께 사망했다고 한다.

이 모든 전과의 대가는 격추된 조종사 1명, 샤예텟 13 전사자 3명, 하렐 부대 부상자 1명에 불과했다.

나세르 대통령의 심장마비

뻔뻔스러울 정도로 대담한 이스라엘의 기습 소식은 순식간에 카이로에 전해졌다. 이 소식을 접한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은 충격으로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정신을 차린 그는 즉각 육·해군 수뇌부인 아흐메드 이스마일 알리 장군과 홍해 지역 사령관 후아드 아부 지크리를 비롯한 다수의 장교들을 파면했다. 그리고 1년 뒤, 나세르는 세상을 떠났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집트는 9월 11일, 항공기 102대를 동원해 시나이의 이스라엘 진지에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지만, 항공기 8대(다른 자료에 따르면 11대)를 잃고 이스라엘기 1대만 격추하는 데 그쳤다. 바닥난 이집트군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카이로는 이 기습을 인정하면서도 '침입자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고 격퇴당했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