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력은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 적이 이미 우리의 공격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전략적 기습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전술적 기습은 노려볼 수 있었다. 공세의 규모, 개시 시점, 주공 방향에 대해 적을 속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고, 계획도 그에 맞춰 수립되었으며 결과는 탁월했다.
병력 집결의 은폐
우선 병력과 장비의 집결을 숨겨야 했다. 참모부는 결전일(D데이) 당일의 세부 초기 배치—부대, 전차, 화포 등—를 상세히 수립하고 최대한 조기에 실행해, 이후에는 중대한 변경이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그래야 적이 D데이 2~3주 전에 촬영한 항공사진에서 아군 진영의 변화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예비 수송부대와 가짜 트럭이 동원되었고, 공격 부대가 도착하는 대로 밤사이 엄격한 통제 아래 실제 차량으로 점진적으로 교체했다. 공격 보병이 사용할 좁은 참호 역시 밤에 파고 즉시 위장했다.
남부 방면 기만 작전
다음 과제는 적이 공격이 남부 지역에서 시작될 것이라 믿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이는 제13군단에게 결코 반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고결하게도 전체적 이익에 복종했다. 남부에는 광범위한 가짜 물자 저장소, 가짜 송유관, 가짜 저수지가 건설되었고, 그 공사가 실제 D데이보다 1~2주 늦게 끝나는 것처럼 적의 눈에 보이도록 조치했다. 마침내 공격 당일 밤에는 한 기갑사단 지휘소의 무선 교신을 조작해, 대규모 기갑부대가 남부 지역에서 이동 중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모의 상륙 작전
10월 23일 밤에는 적 진지 배후에서 모의 상륙을 벌이기로 했다. 오후 4시 호송 선단이 알렉산드리아를 출발해 서쪽으로 향했고, 해질녘 대부분의 선박은 항구로 돌아왔다. 소수의 고속 함정만이 상륙을 가장하며 해안을 포격하고 기총소사를 퍼붓고 탐조등을 비추었다. 이는 제로 아워(총공격 개시) 약 3시간 후, 적 예비대를 붙잡아 두기 위한 장치였다.
물류와 후방 정비
물류 측면에서도 할 일이 산더미였다. 방어전 기간 내내 거의 모든 저장소가 후방에 배치되어 있었으므로, 공세에 나서기 전에 전체 보급 체계를 최대한 전방으로 밀어 올려야 했다. 저장소를 이전하고 은폐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모든 준비는 한편으로는 서쪽 방향 철도를 최대한 빨리 건설하는 것, 다른 한편으로는 곧 점령하게 될 항구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전제로 추진되었다. 아울러 전차와 기타 전투 장비의 고장 수리 체계 정비에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몽고메리와 럼스덴의 갈등
제10기갑군단의 임무와 관련해 몽고메리가 계획을 수정하면서, 군 사령관과 럼스덴(Lumsden) 장군 사이에 위기가 일 뻔했다. 럼스덴은 암흑기에 기갑사단장으로서 용맹하게 싸운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기병 출신답게 기동전을 생각했고, 현대식 전차로 무장한 자신의 기갑부대가 보병이 열어준 돌파구로 돌진해 적 후방에 공포를 뿌리는 날을 꿈꾸고 있었다. 그래서 군 사령관의 새 지침을 몹시 못마땅하게 받아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부하들을 지휘소로 불러 작전 계획과 견해를 설명했다. 몽고메리가 부재 중이었기에 나는 직접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는 금방, 제10군단장이 기갑부대 운용에 관한 새로운 구상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회의가 끝난 뒤 나는 그와 면담하며 몽고메리 장군이 말한 대로 작전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럼스덴은 여전히 불만스러워했고, 명령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나쁜 버릇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몽고메리가 복귀하자 나는 경위를 상세히 보고했고, 그는 즉시 제10군단장에게 해야 할 바를 분명히 했다. 럼스덴은 규율 있는 군인답게 반대를 멈추고 자신의 명령을 변경했다.
준비 완료, 그리고 장교들을 향한 연설
10월 셋째 주가 끝날 무렵, 방대한 준비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령부의 업무 속도가 느려진 것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갖춰졌다는 신호였다. 몽고메리는 만반의 준비를 확실히 해두었다. 그는 부대가 작전 전체 계획을 알 때 최고의 성과를 낸다는 사실을 매우 정확하게 판단했고, 그래서 각 부대는 전체 기동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알고 있었다.
10월 19일과 20일, 그는 세 개 군단의 중령급까지 모든 고급 장교를 상대로 연선했다. 이는 역작이었다. 이 연설들은 그가 행한 것 중 가장 뛰어난 것에 속했다. 그는 적의 약점을 짚어내며 자신감을 드러냈고, "어쩌면 열흘"쯤 지속될 죽음을 건 결투를 각오하라고 말했다. 아군 병력과 막대한 탄약 비축량에 대한 세부 사항도 설명했다. 그리고 주도권을 반드시 쥐고 있어야 하며, 모든 사람—모든 사람!—이 "독일인을 죽이려는" 뜨거운 열망에 사로잡혀 있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심지어 군목들도—평일에는 한 명씩, 일요일에는 두 명씩!"이라는 말에는 폭발적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승리에 대한 확신을 밝히며 연설을 맺었다.
D데이 전야
병사들은 10월 21일과 22일 이틀간 외부와 차단된 채 통금을 당했고 추가 외출 허가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23일, 제8군 전체는 엄청난 열정에 사로잡혔다. 모두가 승리를 확신했다.
22일 아침 몽고메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계획과 의도를 개괄하고 성공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밝혔다. 많은 종군기자들은 이토록 굳건한 자신감에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그런 확신을 보일 수 있는가? 일부는 아마도 지뢰밭과 강력한 적 방어선을 떠올렸을 것이다. 군 사령관의 낙관주의가 놀라울 정도로, 그만큼 심각한 문제를 안겨줄 방어선이었다.
23일 오후 우리는 차로 전방 지휘소로 이동했다. 전방 지휘소는 해안 근처, 제30군단과 제10군단 지휘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주 지휘소 및 각 군단 지휘소와 매설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었고, 차량들도 적의 공습을 부르기 쉬운 간선 도로 인근에 두지 않고 지휘소 주변에 참호를 파고 은폐해 두었다. 이 전방 지휘소는 매우 잘 작동했다. 나는 끝내 그곳을 떠나지 않았고, 모든 참모는 언제든 전화로 나에게 연락하거나 한 시간 안에 회의에 소집될 수 있었다.
10월 23일 밤, 제로 아워
23일 저녁은 황홀했다. 아름다운 달빛 아래 최종 배치가 시계태엽 같은 정밀함으로 이루어졌다. 제로 아워가 다가오자 우리는 전투가 시작되는 광경을 볼 수 있는 언덕으로 차를 몰았다. 몇 대의 아군 항공기가 적 진지 상공을 비행하며, 달빛에 비친 어둠 속 전선을 향해 밀집 종대로 진격하는 제10군단 전차들의 소음을 덮었다. 이따금 짧은 기관총 사격과 포병의 일제 사격이 평소처럼 밤을 깨뜨렸다. 손목시계를 보니 밤 9시 30분. 10분 남았다. 나는 가만히 서 있을 수 없었다.